
제목이 가리키는 성경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성경이 그렇습니다. 히브리어란 말이 나왔으니 구약성경을 가리키지 않겠습니까? 구약성경은 어떤 언어로 기록되었습니까? 히브리어가 기본이지만 극소수는 아람어로 기록되었습니다. 물론 히브리어와 아람어는 같은 어족이기에 예외로 보기는 그렇습니다. 문제는 그 구약성경을 신약성경 기록자들이 인용한 사례입니다. 아쉽게도 히브리어 구약성경에서 직접 인용한 구절은 희박합니다. 그렇다면 신약 기록자들은 어떤 구약성경에서 인용했습니까? 분명 구약성경이라며 제시했으니 어떤 성경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한글 번역본 중 "공동번역"이나 "새번역"을 보십시오. 구약을 인용한 구절에 이따금 출처를 발겨주기도 합니다. 그렇게 칠십인역 혹은 칠십인경이란 뜻 모를 단어를 만납니다. 심지어 "LXX"라는 표기로 만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일반 신자들은 오히려 친절이 낯설기만 합니다. 앞에서 말한 칠십인역과 칠십인경, LXX 모두 같은 책입니다.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헬라어 구약성경입니다.
1947년 사해사본이 발견되기 전까지 칠십인경이 가장 오래된 구약성경 사본이었습니다. 문제는 성경을 다른 언어로 번역할 때입니다. 가장 오래된 성경 사본이 권위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자니 구약은 히브리어 성경보다 헬라어 성경이 우선시됩니다. 더구나 히브리어 성경과 헬라어 성경은 편집 자체가 달랐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은 24권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반면 헬라어 성경은 39권으로 편성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읽는 구약성경이 몇 권으로 되었는가를 보십시오. 24권이 아니라 39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읽는 성경은 헬라어 성경을 따른 모양새입니다.
같은 구약성경인데 왜 이렇게나 권수에 차이가 있습니까? 이는 헬라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몇몇 책들을 나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사무엘서를 사무엘상과 사무엘하로 나눴습니다. 열왕기도 열왕기상과 열왕기하로 나눴습니다. 그렇게 분책하니 권수가 늘었습니다. 그러나 내용은 전혀 차이가 없습니다. 문제는 분책이 아니라 재배치, 곧 편집체계입니다. 히브리어 구약성경과 헬라어 구약성경은 그래서 책 순서가 다릅니다. 그 결과 마지막 책이 서로 다릅니다. 히브리어 구약성경은 마지막 책이 역대기입니다. 반면 헬라어 구약성경은 마지막 책이 말라기서입니다. 그러니 분책과 재배치, 그 유불리를 물어야 합니다.
자, 그러면 예수님은 어떤 구약성경을 더 자주 사용하셨습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과 만나 말씀하시는 몇 장면을 보십시오.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에게 예수님이 나타나 동행하십니다. 그들과 나눈 대화는 말씀을 풀어 예수님 부활을 증명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말씀을 풀어 설명하시자 제자들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신자라면 모름지기 뜨거운 신앙이 최고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뜨거운 믿음을 가져야 옳겠습니까? 말씀으로 뜨거워져야 뒤탈이 없고 제대로 헌신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풀어주신 말씀이 무엇인지 잘 보십시오.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눅 24:27)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눅 24:44)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이라고 했습니다. 열한 제자에게 말씀하실 때는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구약성경을 어떤 관점으로 이해하셨는지 잘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무엇보다 구약성경을 세 단위로 나누셨습니다. 첫째는 모세의 율법, 둘째는 선지자의 글, 셋째는 시편입니다. 여기서 시편이란 시편 그 자체보다는 시편이 포함된 단위를 뜻합니다. 다시 말해 시편이 포함된 세 번째 단위인 성문서입니다. 예수님은 율법과 선지서, 성문서로 본 셈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히브리어 성경이 더 익숙했다고 보입니다. 반면 사도들과 신약성경 기록자들은 헬라어 성경에 더 가깝습니다. 유대인들마저 히브리어보다 헬라어를 더 자주 사용하는 풍토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굳이 히브리어 성경을 인용할 까닭이 있겠습니까? 어차피 헬라어로 재번역해야 한다면 말입니다. 아예 처음부터 칠십인경에서 인용하면 될 일 아닙니까?
1세기에서 2세기로 넘어가던 시절, 교회 상황은 어떻습니까? A.D. 70년에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었습니다. 이제는 법궤 없는 성전이 아니라 성전 없는 예배를 고민해야 합니다. 사두개인이 모조리 사라진 마당에서 바리새인들은 성전 없는 예배, 그 가능성을 묻습니다. 그리고 기필코 그 가능성을 찾아냈습니다. 그렇게 2차 유대교로 재편된 유대교가 무엇을 앞세웠습니까? 그들은 정경(Canon)을 내세우며 단호하게 외경을 비롯한 종교서적을 잘라냈습니다. 그 결과 24권을 정경이라 주장하며 세 단위로 편집했습니다. 율법과 선지서와 성문서로 말입니다. 소위 "타나크"라 부르는 이 체계는 "계시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성경 기록자가 선지자인가를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그렇게 율법과 전기와 후기로 나뉜 선지서가 핵심을 이룹니다.
성문서는 어쩌면 기록자가 선지자가 아닐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지혜문학을 담은 시편과 욥기와 잠언을 "진리의 책"(에메트)로 배치합니다. 이제는 효용 가치가 사라진 절기용 성경들, 곧 메길로트가 그 뒤를 잇습니다. 아가서, 룻기, 전도서, 에스더서, 예레미야 애가 등 다섯 권입니다. 그리고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책들을 마지막에 배치합니다. 에스라서, 느헤미야서, 다니엘서, 역대기 등입니다.(어쩌면 이들은 성경이 아닐 수도 있다는 불확신에 따른 배열로 보입니다.)
초대교회는 유대교가 치열하게 정경 논쟁하던 때 무엇을 했습니까? 그 시절 초대교회도 엄청 정경 논쟁이 심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관점은 전혀 달랐습니다. 다시 말해 초대교회는 신약성경 형성과정이 진행 중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성경이 복음서인가를 비롯한 신약 정경화가 관건이었습니다. 미안하지만 이는 구약성경은 신약성경만큼 그렇게 치열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아니, 어쩌면 유대교가 얻어낸 결과를 거저 얻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구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논증하는 수준에 거의 머물렀다고 봅니다.
그런데 어떻게 구약성경 편집순서는 유대교와 달라졌습니까? 심지어 예수님조차 유대교식 편집순서를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따라서 이는 2차 유대교가 만들어낸 편집이 아님을 뜻하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유대교와는 다른 편집체계를 따른 까닭이 무엇입니까? 도대체 성문서에 있는 어떤 성경 때문에 편집체계를 뒤틀었습니까? 그 결과 한글 성경은 히브리어 성경에서 번역했습니다. 반면 편집체계는 히브리어 성경이 아닌 헬라어 성경을 따랐습니다. 그러니 왜 정경임을 인정하면서도 편집체계는 뒤바꿨습니까? 과연 그 미스터리에는 어떤 성경이 숨어있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