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엄마니까 괜찮은 줄 알았지

 

엄마니까 괜찮은 줄 알았지

 

나는 엄마에게 가끔 너무했다. 아니, 가끔이 아니었다. 아주 자주, 너무했다. 화풀이처럼 말을 쏘아붙인 적도 있었고, 전화기 너머의 한숨을 건성으로 넘긴 적도 있다.


어떤 날은 미루고, 어떤 날은 잊었다. 엄마가 나를 기다린다는 걸 알면서도, ‘나도 바빠’라는 말 하나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엄마니까 괜찮을 줄 알았다.

 

힘들면 제일 먼저 엄마를 찾았다. 속상한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엄마에게 털어놓았다. 울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엄마에게 전화했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가장 먼저 털어놓는 사람은 엄마였다.

하지만 정작, 엄마의 하루가 어땠는지는 묻지 않았다. 엄마 힘든 날에는 엄마가 묻지 않으면 나도 모르는 척했다. 


“엄마는 원래 그런 거 잘 참잖아.”
“엄마는 강하니까 괜찮잖아.”

"엄마는 나보다 더 어른이잖아.

 

그 말들은 위로가 아니었고, 내 책임을 넘기는 주문이었다. 엄마니까, 괜찮은 줄 알았다. 그래서 나는 너무 쉽게 엄마에게 짜증을 냈고, 너무 당연하게 엄마의 시간을 빼앗았다. 아무렇지 않게 서운하게 했고, 의도 없이 상처를 주었다.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엄마니까, 괜찮을 줄 알았다.
엄마니까, 다 이해해줄 줄 알았다.
엄마니까, 항상 그 자리에 있을 줄 알았다.

 

나는 항상 기대기만 했다. 엄마가 내 기분을 맞춰주는 것이 당연한 일인 줄 알았다. 내가 화나 있으면 엄마가 눈치를 봤고, 내가 슬퍼 보이면 엄마가 먼저 알아줬다. 엄마는 늘 기다려줬다. 말끝이 거칠어도, 문을 쾅 닫고 들어가도, 아침 인사를 건너뛰어도 언제나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늘 나보다 먼저 문을 열어주고, 밥상을 차려주고,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넸다. 나는 그런 엄마의 태도를 강함이라 착각했다. 그래서 더 많이 기대고, 더 많이 소홀히 했다.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엄마니까, 괜찮은 줄 알았다.

 

어린 시절, 엄마가 짓던 표정을 이제야 이해한다. 찬물에 손을 담그던 뒷모습, 새벽같이 일어나 나를 깨우던 그 발소리, 말없이 밥상을 차리고 또 치우던 눈빛 그 안에 쌓여 있던 피로와 슬픔을 나는 다 모른 척했다.

 

 

엄마는 자주 말없이 웃었다. 그 웃음이 ‘괜찮다’는 뜻인 줄 알았다. ‘지금처럼 해도 좋다’는 허락인 줄 알았다.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 모든 건 참음이었다. 서운함을 참는 시간, 기다림을 참는 마음, 사랑해서 더 말하지 못한 오랜 인내였다.

 

어느 날, 엄마의 눈이 깊게 꺼져 있는 걸 보았다. 말수가 부쩍 줄어든 걸 느꼈다. 숨소리마저 지쳐 보였다. 그제야 알았다. 엄마도 사람이란 걸, 엄마도 외롭고, 엄마도 서운하고, 엄마도 울고 싶을 때가 있다는 걸, 그동안 나는 엄마를 하나의 역할로만 여겼다.


엄마는 늘 엄마였고, 엄마는 늘 강해야 했고, 엄마는 늘 나를 지켜야 했다. 나는 엄마의 이름을 잊고 살았다. 엄마도 누군가의 딸이고, 엄마도 누군가의 친구고, 엄마도 꿈을 꾸던 사람이었다는 걸, 한참이 지나서야 떠올렸다. 엄마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건 정말로 괜찮아서가 아니었다. 그저, 말하지 못한 거였다.


내가 너무 자기 얘기만 하니까, 내가 너무 쉽게 짜증을 내니까, 그 침묵이 더 쉬운 선택이 되었던 것이다. 사람은 참을 수 있는 만큼만 참는다. 하지만 엄마는 참을 수 없는 것도 참는 사람이었다. 그건 위대해서가 아니라, 사랑했기 때문이다. 자식이라는 이유 하나로 너무도 많은 걸 감당해온 사람이었다.

 

이제는 안다. 엄마는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수없이 울었을 것이다. 나 몰래 베개를 적셨을 것이고, 내가 돌아선 뒷모습을 붙잡고 싶었을 것이다.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는 아무 말도 듣지 못했다. 

 

나는 이제서야 안다. 그때는 몰랐다. 지금 나는 내 아이에게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아주 자주, 내가 예전의 ‘그 아이’였음을 떠올린다. 똑같이 사랑을 주고도, 똑같이 외로운 마음이 되어 돌아오는 그 감정을 이제야 느끼고 있다. 그 시절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엄마는, 아무 때나 괜찮은 사람이 아니었어.” 그래서 더 미안하고, 그래서 더 가슴이 저리다. 


말투가 거칠어도, 연락이 늦어도, 무심한 하루가 지나가도 엄마는 여전히 나를 기다려준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래도 되는 줄 알지 않는다. 엄마도 상처받는 사람이고, 엄마도 사랑받아야 할 사람이고, 엄마도 이해받아야 할 사람이다. 그러니 오늘은 내가 엄마의 하루를 물어보려 한다. 엄마의 기분을 살피려 한다.
 

나는 지금, 이 글로 말하고 싶다. 엄마의 손을 꼭 잡고, “엄마, 정말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이 말이 너무 늦지 않기를, 그리하여 엄마의 마음에도 작은 위로가 남기를, 나는 오늘도 이 문장을 적는다.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작성 2025.08.03 06:51 수정 2025.08.05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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