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용 (수필가/철학자)
“생각이 안 나, 오빠!”
먼 곳에서 꺼낸 소리였습니다. 귓가에 들리는 소리였지만,그것은 지구 반대편에서 시작된 소리였습니다. 아내는 아까운 시간 속에서 그저 감정에 짓눌린 소리만 남기고 있었습니다.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일 초, 이 초, 그러다 어느 순간에 떨어지는 동전 소리, 가슴이 아팠습니다. 말을 잇지 못하는 아내가 불쌍했습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쓸데없는 말로 시간을 재촉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냥 기다렸습니다.
나는 늘 형상에 강하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눈으로 보는 것에는 남다른 힘이 주어져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어릴 적, 태양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던 때에 이미 그런 생각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때부터 항상 맹목이 될 때까지 사물을 응시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태양을 볼 수 있는 눈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태양을 본 적이 있니?’
이렇게 물으면 대답하는 친구는 드물었습니다. 내가 원하는 대답을 들려주는 친구는 거의 없었습니다.
정답을 전제한 것도 아니었지만, 나는 내가 원하는 대답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말을 하는 그 사람에 의해 규정될 뿐입니다. 나에게 깨달음을 안겨주는 그런 말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언제나 나를 놀라게 했습니다. 아내는 형상에는 약한 모습을 보였지만, 의지에서는 나보다 훨씬 더 강한 힘을 증명했습니다. 하고 싶은 것은 해야 하는 그 고집과 집요함, 그리고 불꽃같은 성격 앞에서 나는 놀라며 뒷걸음치기를 반복했습니다.
나는 독일로 유학을 떠나야 했습니다.
아내도 독일어를 배우고 싶어 했지만, 숫자 세는 것 정도의 수준에서 머물러 더 이상 진척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아내의 한계였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가던 길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나의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결국 나만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아내는 고국에 남아 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혹은 이주일이 지났나, 그때, 어느 날 저녁 시간에 맞춰서 아내가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생각이 안 난다는 말, 그것은 기억이 안 난다는 말이었고 또 보고 싶다는 고백이었습니다.
사진 있잖아. 말을 했지만 위로가 안 되었습니다.
어제는 혼자 영화관에 갔다고 했습니다. 늘 같이 갔던 영화관에서 혼자 앉아 있었다고 했습니다. 잘 견디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삼켰습니다.
그렇게 칠 년 육 개월이 지나, 1999년 2월 16일, 설날에 인천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큰처남이 아내와 함께 마중을 나왔습니다.
명절이라 길은 한없이 막혔습니다.
우리는 뒷좌석에서 서로 손을 맞잡고 있었습니다. 잘 견뎌줘서 고마웠습니다. 이제부터 늘 함께 시간을 보내겠노라 다짐을 했습니다.
긴 터널 안에 몇 시간 동안 갇혀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 터널을 지날 때면 똑같은 말을 하며 농담의 시간을 가집니다. “그때 정말 이 길이 꽉 막혔었잖아! 근데 숨통이 트였어!”
막혔지만 트였습니다. 함께 한다는 그 느낌이 좋았습니다. 내 곁에는 아내가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한두 달 후, 우리는 결혼을 했습니다.
칠 년 육 개월이라는 유학기간을 합하여 우리는 십삼 년 연애의 시간을 채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시간은 결혼이라는 형식 속에서 흘러가고 있습니다. 시간 보내기가 즐겁기만 합니다. 때로는 안타까움도 있지만 웃으려고 애를 씁니다. 때로는 눈물이 날 때도 있지만 좋은 면을 보려고 노력합니다.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가족이라서 더욱 소중하게 여겨집니다. 함께 보낸 시간이 늘어날수록 생각할 추억이 많아져서 좋습니다.
오늘도 한강의 소설 《검은 사슴》을 읽고 있습니다.
빨리 읽고 싶지 않은 책입니다. 시간 보내기를 느리게 하고 있습니다.
죽음이라는 꿈에서 사랑하는 이를 건져주기 위해 노력하는 한 인간의 노력을 바라보면서 감동도 하고 눈물도 흘리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