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 '샤일록'이 악인이 된 이유

- 살 1파운드에 담긴 진실: 당신이 몰랐던 샤일록의 피눈물.

- 빌런인가 희생양인가? 셰익스피어가 숨겨둔 반전의 메시지.

- 우리가 뱉은 침이 칼이 되어 돌아올 때: 샤일록이라는 거울이 비춘 우리의 민낯.

▲ AI 이미지 (제공: 중동디스커버리신문)

『베니스의 상인』: 법과 자비의 위태로운 줄타기

 

이 작품은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배경으로, 상인 안토니오가 친구 바사니오의 청혼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게 돈을 빌리며 시작된다. 안토니오는 자신의 상선을 담보로 잡히지만, 기한 내에 빚을 갚지 못할 때 가슴 근처의 살 1파운드를 떼어준다는 파격적이고 잔인한 증서를 작성한다. 

 

공교롭게도 안토니오의 배들이 침몰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평소 기독교인들에게 멸시받던 샤일록은 법대로 안토니오의 살을 가져가겠다며 복수를 다짐한다. 재판이 벌어지고 샤일록이 승기를 잡으려던 찰나, 재판관으로 변장한 ‘포샤’가 "살은 가져가되 피는 한 방울도 흘려서는 안 된다"라는 법의 맹점을 찔러 샤일록을 파멸시킨다. 결국, 샤일록은 재산을 몰수당하고 강제로 개종당하며, 안토니오의 상선들이 무사히 돌아오는 것으로 극은 겉보기에 완벽한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베니스의 '개'라 불렸던 남자, 샤일록의 눈물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은 단순한 희극이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한 영혼이 어떻게 사회적 낙인과 증오 속에서 서서히 악마의 형상으로 빚어져 가는지를 보여주는 잔혹한 기록화에 가깝다. 우리는 흔히 샤일록을 피도 눈물도 없는 고리대금업자의 전형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가 왜 그토록 서슬 퍼런 칼날을 갈아야만 했는지, 그의 가슴속에서 타오르던 불길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를 묻는 이는 드물다.

 

베니스의 화려한 운하 뒤편,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게토(Ghetto)에 갇혀 살아야 했던 샤일록에게 세상은 결코 따뜻한 품을 내어준 적이 없다. 안토니오는 그를 향해 "이교도", "개"라 부르며 침을 뱉었고, 그의 신앙과 민족을 조롱했다. 샤일록은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고통 속에 살았다. 그가 돈에 집착했던 것은 단순히 탐욕 때문이 아니라, 그를 보호해 줄 유일한 방패가 오직 금전뿐이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이 거세된 자리에 남는 것은 생존을 향한 처절한 독기뿐이다. 

 

샤일록의 비극이 절정에 달한 것은 그의 딸 제시카의 가출이었다. 자기 핏줄인 딸이 아버지의 재산을 훔쳐 원수의 종교를 가진 사내와 도망쳤을 때, 샤일록이 느꼈을 배신감은 단순한 분노를 넘어 존재의 붕괴였을 것이다. 그는 이미 모든 것을 잃었다. 명예도, 가족도, 그리고 마지막 남은 자부심도 말이다. 그가 안토니오의 살 1파운드를 집요하게 요구한 것은 돈을 받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을 짓밟은 거대한 기독교 사회를 향한 단 한 번의 비명이자, 비뚤어진 방식으로나마 정의를 실현하려 했던 약자의 발악이었다.

 

법정에서 판결은 또 어떠한가? 포샤의 "피 한 방울도 흘리지 말라"는 명판결은 통쾌해 보이지만, 실상 법의 정신을 이용한 또 다른 폭력이었다. 자비를 외치던 기독교인들은 샤일록이 패배하자마자 그의 전 재산을 빼앗고 그가 목숨처럼 여긴 신앙을 강제로 버리게 했다. 과연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사랑'인가? 우리는 종종 종교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배타성과 우월감을 보았다. 타자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하는 정의는 그저 잘 닦인 칼날일 뿐이다. 샤일록을 악인으로 만든 건 그 자신의 성품이 아니라, 그를 '사람'으로 보지 않았던 베니스의 차가운 모든 시선이었다. 

 

지금, 우리 곁에도 수많은 샤일록이 살고 있다. 이주 노동자, 소수자, 무슬림, 유색 인종, 혹은, 우리가 만든 편견의 틀 속에 가둬버린 그 누군가 말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침을 뱉고 조롱하면서, 그들이 칼을 들었을 때만 비로소 그들을 '악마'라 부르며 정죄한다. 하지만, 그 칼자루를 쥐여준 것이 바로 우리의 무관심과 증오였다는 사실은 애써 외면한다. 

 

샤일록의 통곡은 16세기 베네치아에만 머물지 않고, 오늘날 혐오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심장을 두드린다. 진정한 승리는 상대를 무릎 꿇리는 법의 논리가 아니라, 그가 흘리는 눈물의 무게를 헤아릴 줄 아는 긍휼에서 시작된다.

 

결국, 안토니오의 배들은 돌아왔고 베니스는 축제를 벌이지만, 홀로 어둠 속으로 사라진 샤일록의 뒷모습은 우리에게 묻는다. 자비 없는 정의가 승리한 세상에서, 우리는 과연 행복할 수 있는가? 신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은 정죄의 칼을 휘두르는 게 아니라, 상처받은 영혼의 곁에 앉아 함께 울어주는 것임을 나는 이 희극이라는 이름의 비극을 통해 다시금 뼈아프게 묵상한다. 영혼 없는 법전이 아니라, 체온이 느껴지는 사랑만이 이 세상의 뒤틀린 복수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는 유일한 열쇠이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여전히 샤일록을 욕하면서 그처럼 살고 있는가? 만약. 우리가 세상 모든 이에게 '개'라 불리며 침 뱉음을 당한다면, 우리는 과연, 자비의 꽃을 피울 수 있을까, 아니면, 복수의 칼날을 갈게 될까?

 

작성 2025.12.27 10:35 수정 2025.12.27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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