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놀을 기다리며

 

이동용 (수필가/철학자)




반시대적 고찰에서 니체는 “세상 사람들은 모두 풍속과 의견 뒤에 숨는다”는 말로 인간의 내면에 자리잡은 게으름과 비겁과 소심함 등을 비판했습니다. 그런 심성 때문에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중세 천 년’은 말장난이 아니었습니다. 


르네상스가 출현했지만, 한계가 있었습니다. 기존의 틀 안에, 기득권 안에 머물렀습니다. ‘르네상스의 한계’였습니다.


또 니체는 안티크리스트에서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 자들을 향해 이런 말로 경고를 했습니다. 


“오오, 그들 교부님들은 정말 영리하다. 신성하리만큼 영리하다!” 


교회 전문가들은 교회의 아버지, 즉 교부라 불리며 권세를 누렸습니다. 교부 철학자들의 영리함은 하늘을 찔렀습니다.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그들은 어둠을 연출했고, 그 어둠은 천 년을 관통했습니다.


중세에는 교회 관계자가 모든 것을 지배했습니다. 재판도 교회의 지배하에 놓여 있었습니다. 


소위 믿는 자들이 자행했던 ‘종교재판’이나 ‘마녀사냥’에 걸리면 빠져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믿음’을 죄목으로 삼으면 믿음이 있다는 것을 증명할 길이 없었습니다. ‘믿습니다!’ 하고 아무리 외쳐대도 ‘거짓말하지 말라!’ 하고 받아 치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었습니다.


아무 여자나 붙들고 ‘너, 마녀지?’ 하고 의혹을 제기하면 빠져나올 길은 없었습니다. 믿음이 기준이 되면 무고한 자들이 희생되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었습니다. 그것을 알면서도 세상을 바꿀 수 없었던 것은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무기력함 때문이었습니다.


판사가 피고인에게 절을 하기도 했습니다. 


기득권 앞에서는 판사도 양심을 버렸습니다. 가진 게 많은 사람 앞에서는 판사도 눈치를 봐야 했습니다. 


기득권의 권력 앞에서는 복종만이 답이었습니다. 죄를 지었어도 기득권을 향한 판사의 판결은 우호적이기만 했습니다.


반면에 시민이 잘못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벌을 받았습니다. 그런 현상은 계급 사회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났습니다. 


빅토르 위고는 레미제라블을 통해 그런 부패 현상을 적나라하게 폭로했습니다. 빵 하나 훔쳤다고 평생을 감옥에서 보내야 하는 신세를 세상에 까발렸습니다. 중세의 현상이 아직도 현실로 작동했습니다. 혁명의 불길은 더욱 뜨거워야 했습니다.


지금은 근대도 지났고, 이름도 바뀌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현대인입니다. 


나는 현대의 모범으로 우리나라를 꼽고 싶습니다. 대한민국의 역사와 사회와 문화는 발전의 현상을 잘 보여줍니다. 


우리가 우리 사회를 조금만 더 바꿀 수 있다면, 세상은 우리의 역사를 모범으로 삼아 공부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기대가 큽니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찹니다.


기득권은 영리합니다. 


기득권은 말 그대로 이미 기, 얻을 득, 권세 권, 즉 자신이 ‘이미 가진 권력’을 즐길 뿐입니다. 가진 것을 나눠 가질 생각은 없습니다. 이기적이고 집요합니다. 자기만 알고 고집스럽습니다. 몸과 마음 그리고 정신이 모두 썩었습니다. 명품과 아름다운 말로 내용을 포장하는 데는 일가견이 있을지 모르나, 행태는 늘 구태할 뿐입니다.


중세의 현상은 ‘암흑기’라는 말로 형용되었습니다. 


근대 르네상스인들에 의해 그 현상이 목격되었고, 자신이 본 것을 말로 옮겨 놓는데 용기를 냈습니다. 


중세 기독교인들은 자신이 썩은 줄을 모른다는 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군중, 대중, 시민을 향해서는 그저 눈 가리고 아옹 하는 식이었고, 입에 발린 말로 진리를 운운하기 바빴습니다. 가소롭기 짝이 없었습니다.


세상이 변했습니다. 


중세는 가고 근대가 왔습니다. 하물며 근대가 가고 현대가 왔습니다. 


이제 현대조차 썩어빠진 상태라면, ‘현대 이후’를 기획해야 합니다. 


시간은 흐릅니다. 역사도 시간과 함께 하염없이 흘러갑니다. 


아침놀이 밝아옵니다. 


일제강점기에 우리의 시인 윤동주는 이런 말로 아침놀을 기다렸습니다. “이제 새벽이 오면 / 나팔 소리 들려올 게외다.”


작성 2026.02.02 08:46 수정 2026.02.02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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