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박동명] 지역통합은 ‘속도’가 아니라 ‘정당성’이다

— 주민이 결정하고 소수가 보호받는 통합으로 가야 한다

▲박동명/한국정책연구원 원장 ⓒ한국공공정책신문

 

[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편집자주박동명 교수는 서울특별시의회 전문위원으로 근무하며 지방자치 현장에서 정책·예산·조례 등 주요 의사결정 과정의 합리성과 민주성을 점검해 왔다특히 절차적 정당성과 공론화주민 참여의 실질성을 강조해 왔으며지역통합과 같은 구조개편 논의에서도 결론보다 과정이 민주주의의 신뢰를 좌우한다는 관점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지역 행정통합 논의는 해당 권역의 미래를 바꾸는 중대한 결정이다. 광역자치단체의 경계와 권한, 재정과 서비스 전달체계를 다시 짜는 구조개편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안을 다루는 국회와 정부가 가장 먼저 지켜야 할 기준은 빨리가 아니라 정당하게이다. 절차적 정당성과 민주적 정당성이 흔들리는 순간, 통합은 발전전략이 아니라 불신과 갈등을 증폭시키는 장치로 변질되기 쉽다.


속도전 통합 입법이 남기는 상처


최근 충남·대전, 전남·광주, 대구·경북 등 행정통합 특별법 논의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공론화 부족과 합의 형성의 결여가 반복해서 지적된다. 상임위 단계부터 충분한 숙의와 조정이 이뤄지지 않은 채 처리 논란이 커지는 모습은, 통합의 내용보다 통합의 과정이 먼저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통합은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다. 통합 이후 수년, 수십 년 동안 주민의 생활권과 행정서비스, 지방재정과 대표성이 달라진다. 그럼에도 절차를 단축하고 반대·우려의 목소리를 정치적 장애물로 취급하는 순간, 통합의 정당성은 시작점에서부터 손상된다.


특히 통합 추진 과정에서 대규모 재정지원 약속이 전면에 부각될수록 위험은 커진다. 통합의 설계가 권한과 책임의 재구성이 아니라 재정 인센티브의 크기로 경쟁하는 형태가 되면, 주민의 판단은 장기적 구조개혁의 타당성보다 단기적 유인에 의해 흔들릴 수 있다. 정책결정에서 유인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 다만 유인이 절차와 숙의를 대체하는 순간, 통합은 설득이 아니라 거래처럼 보이게 된다. 그때부터 통합은 지역발전의 공공선이 아니라 정치적 계산의 대상으로 오해받기 시작한다.


주민 동의 없는 통합은 민주주의의 빈 껍데기이다


현재 논쟁의 핵심은 통합의 필요성 여부만이 아니다.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라는 절차의 문제이다. 행정통합은 광역자치단체의 존폐·경계 변경을 수반하고 주민의 생활권과 자치권에 직접 영향을 준다. 이런 결정에서 주민 의사를 직접적·실질적으로 확인하는 절차를 회피한다면, 통합은 민주주의의 외피만 남기는 결과를 낳는다.


지방의회 의견 청취나 타운홀 미팅이 공론장으로서 의미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결정을 대체하려는 태도는 위험하다. 지방의회 역시 정당 공천과 지역정치의 역학 속에 놓인 대표기관이다. 숙의가 충분치 않으면 소수 의견과 주변부의 목소리는 쉽게 주변화된다. 통합의 당사자는 어디까지나 주민이다. 주민투표든 숙의형 공론조사든, 주민이 자신의 미래 자치지도를 선택하는 과정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절차적 최소치를 겨우 채우는 방식은 통합 이후 갈등을 구조화하는 지름길이다.


다수결을 넘어 소수의 권리를 제도화해야 한다


우리 민주주의는 단순한 다수결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원사회에서 민주주의의 품격은 소수의 권리가 안전하게 보호되는지 여부에서 드러난다. 통합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찬성 여론이 우세하더라도 반대·우려의 목소리는 통합을 방해하는 소음이 아니라 통합 설계를 정교하게 만드는 경고음이다. 주변부 지역이 제기하는 생활권 침해, 취약계층이 느끼는 서비스 접근성 저하, 자치권 약화에 대한 불안, 재정 배분의 불균형 우려는 모두 권리 있는 주장이다. 이를 발목잡기로 치부하는 순간, 통합은 공동체의 합의가 아니라 다수의 관철로 기록된다.


통합 추진 세력이 반드시 답해야 할 질문이 있다. “반대 주민은 국민이 아닌가라는 물음이다. 이 질문은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헌법적 감각을 요구하는 질문이다. 통합이 진정으로 지역의 미래를 위한 것이라면, 소수의 권리가 보호되는 장치를 법과 계획 속에 명문화해야 한다. 예컨대 주변부 서비스의 최소 기준을 제도화하고, 재정조정의 배분 원칙을 투명하게 공개하며, 권역별 대표성이 무너지는 것을 막는 보정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런 장치가 없으면 통합은 시간이 흐를수록 중심부 강화와 주변부 소외라는 예측 가능한 경로로 기울기 쉽다.


재정 유인보다 중요한 것은 권한 분산과 책임 행정이다


통합의 본질은 덩치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권한을 재배치하고 책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한시적 지원금은 출발선을 당길 수는 있어도, 지속가능한 발전을 담보하지 못한다. 오히려 통합 광역단체가 실질적 자치입법권과 재정분권의 기반을 갖추지 못한다면, 통합은 무늬만 확대된 행정체계가 될 위험이 있다. 통합이 균형발전의 수단이 되려면, 중앙에 남아 있는 규제 권한과 행정 권한이 어떻게 이양되는지, 재원은 어떻게 안정적으로 확보되는지, 권한과 책임이 어떻게 정합적으로 설계되는지가 핵심이다. “돈을 주겠다가 아니라 권한을 나누고 책임을 묻겠다가 되어야 한다.


정치가 통합을 추진하는 이유가 국가균형발전이라면, 제일 먼저 통합의 성과가 주민의 삶에서 어떻게 체감될지 설계해야 한다. 생활권 단위의 교통·보건·복지·교육 서비스가 약화되지 않는지, 주변부의 접근성이 후퇴하지 않는지, 지역 내부 격차가 확대되지 않는지에 대한 정밀한 영향평가와 공개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 다음에야 재정지원의 규모와 방식이 의미를 갖는다. 순서가 바뀌면, 통합은 정책이 아니라 이벤트가 된다.


절차의 품격이 통합의 성패를 결정한다


지역통합은 더 이상 여야의 힘겨루기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통합의 속도를 경쟁하는 정치가 아니라, 통합의 정당성을 세우는 정치이다. 충분한 시간과 정보를 보장하는 공론화와 숙의가 있어야 한다. 주민이 스스로 미래의 자치지도를 선택하는 실질적 참여 절차가 확보되어야 한다. 찬반 비율과 무관하게 소수 의견을 제도적으로 수렴하고 반영하는 보호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입법자는 다수의 의사를 관철하는 기술자가 아니다. 서로 다른 가치와 이해를 조정해 공존의 틀을 만드는 조정자이다. 특히 통합처럼 되돌리기 어려운 구조개편에서는 절차가 곧 실체이다. 소수의 권리가 존중되지 않는 통합은 언젠가 다시 분열과 갈등의 불씨가 된다. 지역통합이 진정으로 지역의 미래를 여는 길이 되려면, 다수의 동의 위에 소수의 권리가 안전하게 보호되는 구조를 함께 세워야 한다. 그 출발점은 언제나 절차적 정당성이다.


박동명

▷법학박사,  한국정책연구원 원장

선진사회정책연구원 원장

▷(사)한국공공정책학회 부회장

▷(전)국민대학교 행정대학원 외래교수

▷(전)서울특별시의회 전문위원




 

작성 2026.02.13 22:23 수정 2026.02.13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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