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박동명] 한센인의 시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박동명/한국정책연구원 원장 ⓒ한국공공정책신문

 

[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편집자주) 한센병(Hansen’s disease)은 오늘날 완치 가능한 질환이 되었지만, 한센인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과거 국가 책임 문제는 아직 온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이번 칼럼의 필자 박동명 교수는 20001월부터 200510월까지 '소록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약칭 소사모)' 정책위원장으로 활동하며, 한센인 인권침해 실태 조사와 관련 특별법 초안 마련, 제도 개선 활동에 직접 참여하였다. 이후 서울특별시의회 보건복지전문위원을 역임하며 취약계층 복지정책과 인권 보호를 위해 헌신해온 법학자이자 공공정책 전문가이다.

한국공공정책신문은 한센인의 복지와 인권 문제를 단순한 과거사가 아닌, 지금 이 순간에도 응답이 필요한 공공정책 과제로 바라본다. 제도 개선과 사회적 공감대 형성을 위한 논의를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갈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한센인(person affected by Hansen’s disease)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의학적 완치와 관리의 성공이면에, 복지의 사각지대와 미완의 인권 회복 과제가 동시에 놓여 있다.

 

소록도에서 들었던 질문

 

필자는 과거 20001월부터 200510월까지 소사모(소록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공동대표 김신곤-김상렬, 집행위원장 김덕모)’활동을 했다. 특히  필자는 정책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소록도와 전국 정착촌을 돌며 고령 한센인들의 고향 방문사업, 교회·시민 단체와 연계한 미용·봉사 활동을 하며 한센인 어르신들을 만났다. 그 시기 우리는 강제 격리·강제 노역·강제 낙태·단종 수술 등 국가와 사회가 저지른 집단적 인권유린의 실상을 기록하고, 한센인 관련 특별법 초안 마련과 제도 개선을 위해 국회와 정부를 끊임없이 설득했다.

 

당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우리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날이 올까요?”였다. 병은 이미 완치되었지만, 이름과 가족, 생식능력, 삶의 꿈까지 빼앗긴 이들이 스스로를 국가가 만든 희생양이라 불렀을 때, 한 사회의 문명 수준이 무엇으로 평가되어야 하는지 깊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센병, 이제는 관리 가능한 질환

 

질병관리청 자료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국내 한센병 신환자는 매년 10명 이내 수준으로 감소했으며, 최근에는 내국인 1, 외국인 2명 등 극소수의 신환자만 보고되고 있다. 오늘날 한센병은 조기 발견과 다제병용요법(MDT)으로 완치 가능한 감염병이다. 세계보건기구(WHO)1981년부터 MDT를 표준 치료법으로 권고하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도 신환자 수는 꾸준히 감소세에 있다.

 

그러나 복지의 관점에서 상황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현재 전국의 한센인 관련 거주자는 약 7천여 명으로, 재가·정착마을·국립소록도병원 등 보호시설에 분산 거주하고 있다. 대상자 평균 연령은 80세 안팎의 초고령층으로, 노후화된 정착촌과 양로주택에서 돌봄·의료·주거의 복합 위험에 놓여 있다. 정부는 생활환경 개선, 노후 시설 보수, 생계비 지원 사업을 지속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어르신들은 병은 사라졌지만, 낙인은 사라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진상규명과 사법적 인정, 그러나 여전히 미완

 

2007년 제정된 한센인피해사건의 진상규명 및 피해자생활지원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출범한 한센인 피해사건 진상규명위원회는 해방 이후 1970년대까지 자행된 강제 감금·폭행·강제 노역·강제 낙태·단종 등 각종 인권침해를 공식 조사·기록했다. 이 법은 피해자에 대한 의료·생활지원금 지급을 명시하며, 인권 신장과 생활 안정을 동시에 도모하고자 했다.

 

이후 2017년에 이르러, 한센인 강제 낙태·단종 피해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대법원은 국가의 배상책임을 처음으로 명시적으로 인정하는 확정 판결을 내렸다. 피해 유형에 따라 1인당 수천만 원 수준의 배상이 인정되었고, 국가 행위의 위법성과 인간 존엄 침해가 사법부에 의해 공식 확인된 것이다.

 

그럼에도 입법·행정 측면에서는 여전히 미완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특별법은 최소한의 물질적 보상에 그치고 있으며, 충분한 공식 사과, 포괄적 배상, 후손 지원, 역사교육과 기억사업은 여전히 미흡하다. 피해자 다수가 이미 고령이거나 세상을 떠난 지금, “국가는 과거의 잘못에 충분히 응답했는가라는 물음은 여전히 유효하다.

 

 격리와 보호에서 존엄과 통합으로

 

한센인 정책은 오랜 기간 격리와 보호라는 이름으로 시행되었다. 병을 없앤다는 명분 아래 자유·가족·재산·생식권이 국가에 의해 폭력적으로 침해되면서, ‘보호는 곧 억압의 다른 이름이 되었다. 이제 정책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꿀 때다.

 

구체적으로 세 가지 방향을 제안한다. 첫째, 소록도와 각 정착촌의 역사를 국가 차원의 인권기억 공간으로 정비하고, 교과서와 시민교육에 한센인 인권사를 명시하는 기억과 기록의 제도화가 필요하다. 둘째, 정착촌을 격리의 공간이 아닌 지역 커뮤니티와 연계된 열린 복지마을로 재구성하는 지역사회 완전 통합이 이루어져야 한다. 셋째, 개별 소송으로 허비되는 시간과 비용 대신, 국회가 포괄적 배상·지원 입법을 통해 국가 책임을 일괄 해결하는 것이 피해자의 존엄을 지키는 길이다.

 

복지는 최소한의 생존 보장을 넘어, 존엄과 기억, 관계를 회복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한센인 복지는 이제 단순한 공적 시혜가 아니라, 국가폭력에 대한 책임 이행이자 사회적 화해의 과정으로 재정의되어야 한다.

 

가장 약한 고리를 향한 시선

 

세계보건기구(WHO)가 매년 1월 마지막 일요일을 세계 한센병의 날로 지정한 것은, 한센병 정복이 단지 의학적 성과가 아니라 인권·평등·연대의 지표이기 때문이다. 한 사회의 정의는 가장 약한 고리를 어떻게 대하는가로 측정된다.

 

평균 연령 80세를 넘은 한센인 어르신들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소록도의 좁은 방에서 들었던 한마디가 아직도 귓가에 남아 있다.

우리가 이렇게 살았다는 것만이라도, 잊지 말아주세요.”

  

한센인의 복지와 인권은 소수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국가의 공동체가 어떤 가치를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우리 모두의 답이다. 이제 그 답을 행동으로 증명할 때다.



박동명

▷법학박사,  한국정책연구원 원장

▷(사)한국공공정책학회 부회장

▷(전)전남대, 조선대, 광주대, 국민대 외래교수

▷(전)서울특별시의회 보건복지전문위원
▷(전)소록도를 사랑하는 모임(약칭 소사모) 정책위원장



 

작성 2026.02.21 23:45 수정 2026.02.22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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