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희 칼럼]칸막이 행정 넘어 ‘생애주기 통합 지원체계’로: 고독사 예방의 골든타임

“4060 세대, 왜 ‘고독 공화국’의 가장 약한 고리가 되었나?”

대한민국은 이미 ‘고독 공화국’이라는 이름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일상 깊숙이 고립과 단절이 스며든 사회가 되었다. 특히 40~60대 중장년층의 고독은 개인의 불행을 넘어 노동력 상실과 막대한 사회적 비용으로 이어지는 구조적 위험으로 드러나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고독사로 생을 마감한 이들 중 40~60대가 약 75%를 차지하고, 그 중에서도 50·60대 남성이 절반을 훌쩍 넘는 것으로 나타난다. 경제활동의 핵심 축이자 가정과 직장에서 ‘허리’ 역할을 담당해야 할 세대가 조용히 사회적 연결망 밖으로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실직, 조기 퇴직, 이혼과 사별, 만성질환과 우울은 서로 얽혀 중장년 남성을 특히 고독사 위험으로 내몬다. 부양자이자 가장이라는 책임을 지고 살아오던 이들이 어느 날 일터를 잃고 관계망이 끊기면, 정작 도움을 요청하는 말조차 꺼내지 못한 채 고독 속에 머무는 현실이 자주 목격된다.

이룸평생교육원(주) 원장/ 강서대학교 겸임교수 (이미지출처=케이씨에스뉴스)

■ 청년·노인만 보는 정책, 비어 있는 ‘낀 세대’

고독·고립 문제에 대한 사회적 담론과 정책은 주로 청년 은둔과 노인 고독사에 집중돼 왔다. 하지만 정작 통계에서 가장 높은 위험을 드러내는 집단은 중장년층이다. 정부의 고립·은둔 대응 사업 가운데 중장년층을 직접 겨냥한 지원은 전체의 약 15%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년기에는 학교·청년센터·고용 지원 등 비교적 촘촘한 제도가 작동하고, 노인기에는 기초연금·장기요양·경로당·복지관 네트워크가 어느 정도 안전망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그 사이, ‘낀 세대’인 4060은 돌봄도, 정책도, 관심도 비켜간다. 가족부양의 책임은 크지만, 정작 자신들은 돌봄과 관심의 대상에서 빠져 있는 것이다.

 

■ 생애주기가 끊기는 사회, 고독은 이렇게 구조화된다.

국회입법조사처 보고서 「고립·은둔·고독의 대한민국」은 현재 제도의 가장 큰 문제로 ‘생애주기별 연속적 지원의 부재’를 지적한다. 청소년·청년·중장년·노인으로 생애 단계가 바뀔 때마다 담당 부처와 기관이 바뀌고, 그때마다 지원체계는 초기화된다. 청소년기에 이미 또래관계 단절·학교 부적응으로 고립이 시작된 이들이 있다. 이들이 청년기가 되면 고용·주거 불안이 더해져 은둔으로 심화되지만, 기존 정보와 사례 관리가 연속되지 않아 새로운 시스템에 다시 ‘처음부터 적응’해야 한다. 중장년에 이르러 실직·질병·가족 해체가 겹치면, 이미 취약했던 사회적 관계망은 완전히 끊어지고 만다. 고독사는 이렇게 한순간이 아니라 수년·수십 년에 걸쳐 누적된 단절의 결과다.

 

부처 간 칸막이 역시 문제다. 청년은 한 부처, 여성·청소년은 또 다른 부처, 고용은 또 다른 부처가 담당하고 지방자치단체와 민간은 각자도생식으로 움직인다. 그 사이 실제 사람의 삶은 ‘연속선’이 아니라 행정구역과 연령 기준에 따라 잘려 나간다. 현장에서는 분명히 위험 신호를 반복적으로 목격하지만, 이를 장기적으로 추적·연결할 통합 시스템이 없다 보니 “알고도 못 막는” 고독사가 계속해서 발생한다.

 

■ 데이터가 말하는 현실, ‘정책 공백’은 곧 생명 공백

참담한 점은 이 고독이 ‘느낌’이 아니라 최근 통계로 증명된 현실이라는 것이다. 2025년 까지 공개된 통계는 2024년 고독사 3,924명, 4년 새 11% 증가 추세이고, 위험군으로 분류된 인원은 약 17만 명에 이른다. 이는 단순한 외로움이 아니라 실제 위기 상황에서 구조가 닿지 않는 심각한 사회적 고립을 의미하며, 실직에 따른 생산성 손실, 정신건강 악화에 따른 의료비, 주거·치안·수습 비용 등 막대한 사회적 비용에도 불구하고 이에 상응하는 정책 투자는 여전히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 영국·일본은 왜 ‘고독부 장관’까지 만들었나?

우리보다 먼저 고독 문제를 국가 의제로 끌어올린 영국과 일본은 독특한 선택을 했다. 영국은 ‘고독부 장관’을 임명하고, 고독을 정신건강·지역사회·노동·교육 등과 연결된 구조적 문제로 다루기 시작했다. 일본 역시 ‘고독·고립 대책 담당 대신’을 두고 자살·고독사·은둔형 외톨이 문제를 통합적으로 다루는 컨트롤타워를 만들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두 가지다. 첫째, 고독을 ‘개인의 성격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정책의 실패’로 인식했다는 점. 둘째, 부처 간 칸막이를 넘는 국가 주도의 통합 사령탑을 세워 장기 로드맵 아래 정책을 조정했다는 점이다. 우리 역시 ‘고독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선 이 수준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 통합법, 통합 사령탑, 생애주기 지원

이제 한국 사회가 취해야 할 방향은 비교적 분명하다. 

첫째, 고립·은둔·고독 문제를 관장하는 통합적 근거법이 시급하다. 현재는 위기청년 지원, 노인복지, 자살예방, 정신건강, 일자리 정책 등이 각기 다른 법률에 흩어져 있어 한 사람을 생애 전 주기에 걸쳐 지원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청소년기부터 노년기에 이르기까지 위험 신호를 연속적으로 추적하고 지원을 이어갈 법적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

 

둘째, 부처 간 예산은 유지하되 사업 설계와 집행을 공동으로 조정하는 ‘고립·은둔·고독 지원 공동운영지침(가칭)’ 제정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중복 사업은 줄이고, 생애주기별·지역별 격차를 조정할 수 있다. 

 

셋째, 데이터 기반 위기 발굴 시스템의 정교화가 필수적이다. 이미 복지·소방·경찰·의료·통신·임대사업자 등 다양한 영역에서 위기 신호가 발생하고 있지만, 이 정보는 제각각의 시스템에 머물러 있다. 실제로 고독사 사망자를 최초 발견하는 이들이 가족이 아니라 임대인·경비원·건물관리자인 경우가 늘고 있다는 사실은, 이들을 ‘민간 인적 안전망’으로 제도화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 중장년을 위한 진짜 예방: 일·관계·돌봄을 묶는 지원

중장년 고독사 예방 정책의 핵심은 ‘발견 후 지원’이 아니라, 고립되기 전 단계에서 사회적 연결을 회복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접근이 필요하다.

- 실직·조기퇴직자를 위한 직업 재설계·재교육 및 사회참여 프로그램

- 이혼·사별을 경험한 중장년을 위한 심리·법률·경제 상담과 또래 지지모임

- 만성질환·장애로 일터를 떠난 이들을 위한 지역사회 기반 돌봄과 일·자원봉사 연계

- 1인 가구 중장년을 위한 소규모 커뮤니티, 동아리, 마을 단위 활동 지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프로그램이 단순한 ‘서비스 제공’에 머무르지 않고 당사자가 직접 기획·운영에 참여하도록 설계되는 것이다. 고독은 누군가가 나에게 무언가를 해주는 것만으로는 해소되지 않는다. 내가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라고 느끼는 경험이 함께 갈 때 비로소 줄어든다.

 

■ 고독 공화국을 넘어, ‘관계 공화국’으로

고독사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사고가 아니라, 오랜 시간 사회가 한 사람을 놓아버린 결과다. 지금 우리는 4060 중장년의 고독을 통해, 사실은 우리 사회 전체의 단절과 균열을 보고 있다. 교육 현장과 복지관, 법정의무교육과 고독사 예방 강의를 오가며 필자가 내린 결론은 단순하다. 고독은 결코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으며, 결국 우리 모두의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것이다.

 

생애주기 통합법, 국가 주도의 통합 사령탑, 데이터 기반 위기 발굴 시스템, 그리고 중장년을 위한 실질적인 관계·일·돌봄 지원이 갖춰질 때, 우리는 비로소 ‘고독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고 서로의 안부를 기억하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고독은 누구의 문제가 아니라 곧 우리 모두의 미래다. 고독을 줄이는 사회는 곧 서로의 안부를 기억하는 사회, 다시 말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다.

 

 

[필자 소개]

# 교육학 박사

# 강서대학교 겸임교수

# 이룸평생교육원(주) 원장

# 안전한 나라 실천연대 대표

# 대한인식생명교육 사회적협동조합 보건이사

# 생명존중 및 중독예방과 자살예방 교육전문가

 

 

 

작성 2026.02.25 00:15 수정 2026.02.26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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