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漢儒學] 가장 무서운 것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무지’다.

맹수와 폭정보다 두려운 것

 

옛사람들에게 가장 두려운 존재는 단연 호랑이였다. 그중에서도 제 새끼를 품어 독기와 살기가 머리끝까지 오른 '유호(乳虎·새끼 밴 호랑이)'는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혼이 달아나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천하의 악인이자 흉악한 도적이었던 도척(盜跖)의 목소리를 두고 옛사람들이 "유호(乳虎)와 같다"며 몸서리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고전은 그 유호(乳虎)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다고 가르친다. 바로 가혹한 정치, 즉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다. 호랑이에게 물리거나 도적을 만나는 것은 개인의 불운이지만, 폭정(暴政)은 만백성의 삶을 통째로 파탄 내고 영혼까지 짓밟기 때문이다. 멀리 볼 것도 없다. 지난 윤석열 정권이 보여준 행태가 바로 그 가혹한 정치의 전형(典型) 아니었는가. 권력을 사유화하고 민생을 외면하며 온 나라를 도탄에 빠뜨렸던 그 폭정의 시간은 옛 고약한 군주들의 서슬 퍼런 칼날보다 더 무서운 호랑이였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정권이 바뀌어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 지금, 혼란스러운 국제 정세 속에서도 나라가 그럭저럭 중심을 잡고 순항하고 있으니 한숨을 돌릴 뿐이다.

 

무지(無知)와 무치(無恥)라는 거대한 재앙

 

하지만 오늘날 나는 유호(乳虎)나 가정(苛政)보다 훨씬 더 본질적이고 압도적인 공포를 마주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무지(無知)'다. 알지 못함은 포호빙하(暴虎馮河·맨손으로 호랑이를 잡고 걸어서 큰 강을 건넌다)와 같아, 아무런 대책도 없이 만용을 부리며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까지 파멸로 이끈다.

 

그러나 이 무지(無知)보다 한 술 더 뜨는 괴물이 있으니, 바로 '무지의 무시(Ignorance of ignorance)'다.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르는 상태, 즉 자신의 무지(無知)'를 전혀 자각하지 못하고 도리어 당당하게 고개를 치켜드는 오만함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고전의 현인들이 경계했던 종착지에 다다르게 된다. 바로 '무치(無恥)'와 '불치(不恥)', 즉 '부끄러움이 없고 부끄러워할 줄도 모르는 상태'다. 무지(無知)한 자가 부끄러움마저 상실했을 때, 그 무지(無知)'는 역사와 공동체를 파괴하는 무소불위의 흉기가 된다.

 

어제 스타벅스코리아(SCK컴퍼니)가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에 저지른 참사는 이러한 '무지(無知)와 무치(無恥)'가 기업 경영에 투영되었을 때 얼마나 섬뜩한 괴물이 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들은 하필 5월 18일 당일에 '탱크 시리즈' 텀블러를 판매한다며 '탱크데이'라는 홍보 게시물을 올렸다. 날짜 '5/18' 위아래로 배치된 그 문구는 광주를 짓밟았던 신군부의 잔혹한 탱크 진압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여기에 더해 '책상에 탁!'이라는 문구까지 집어넣었으니, 이는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당시 전두환 독재정권이 내뱉은 파렴치한 변명("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을 그대로 조롱한 꼴이었다.

 

이것이 의도한 것이라면 현대사의 가장 깊은 상흔을 후벼파는 악질적인 조롱이요, 의도하지 않았다면 공동체의 기억을 통째로 망각한 참혹한 무지(無知)다. 게다가 민주화운동을 이토록 노골적으로 폄훼하고도 부끄러운 줄 몰랐던 그 '무치(無恥)'의 대가는 혹독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이번 논란을 두고 “공동체와 민주의 가치를 부정하는 비인간적 막장 행태”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시민사회에서 규탄의 목소리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자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의 정치 후원 네트워크인 '루브리지 네트워크'의 아시아 총괄 회장을 맡고 있는 '멸콩' 정용진은 자기가 주도한 일인데도 교묘한 꼬리자르기 형태로 스타벅스코리아 대표를 경질하는 척을 했다. 역사의식도, 인간에 대한 예의도 상실한 무지의 소치가 어떤 파렴치한 기만으로 이어지는지 보여주는 씁쓸한 단면이다.

 

이러한 비극은 비단 국내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저 멀리 미국의 정치가 그렇다. 세계 패권을 쥔 강대국이 모든 시스템을 망가뜨리고 사적인 욕망을 정치에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제 세력과 이익 집단 외에는 모두를 사지로 몰아넣고, 전 세계를 진흙탕 같은 혼란 속에 빠뜨린 근원이 무엇이겠는가. 바로 지독한 무지와, 그 무지를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무치(無恥)의 정치'가 결탁했기 때문이다.

 

인간을 무너뜨리는 최악의 공포는 무엇인가

 

유호(乳虎)와 폭정(暴政)을 넘어 무지(無知)와 무치(無恥)까지 왔다. 스타벅스의 막장 행태에서 보듯 역사를 망각한 무지보다 더 무서운 것은 아직 찾지 못했다고 생각하던 중, 문득 인간의 내면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된다. 과연 부끄러움을 모르는 무지보다 더 두려운 흉물이 존재할까?

 

고전의 맥락과 오늘날의 세태를 비추어 볼 때, 굳이 그 위의 단계를 가늠해 본다면 아마 이런 것들이 아닐까 싶다.

 

첫째, 악치(樂恥) — 부끄러움을 도리어 자랑으로 여기는 것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不恥)을 넘어, 자신의 악행과 무지를 마치 훈장처럼 여겨 대중 앞에서 자랑하고 과시하는 경지다. 적반하장이 일상이 된 파렴치한 정치가들이나 일베식 조롱을 마케팅에 써먹는 세태가 보여주는 모습이다.

 

둘째, 강집(强執) — 그릇됨을 알면서도 고집스럽게 밀어붙이는 것

자신이 틀렸음을 내심 알면서도, 오직 기득권을 지키고 상대를 굴복시키기 위해 거짓을 참이라 우기며 폭주하는 아집(아집)이다. 순자(荀子)가 말한 '식위(飾僞·거짓을 꾸며댐)'의 극치다.

 

셋째, 대중의 마비(痲痺) — 그 무치(無恥)를 보며 분노하지 않고 동조하는 것

어쩌면 가장 무서운 종착지일지도 모른다. 권력자나 거대 기업의 무지와 무치를 보면서도 대중이 타성에 젖어 방관하거나, 혹은 진영 논리에 갇혀 그 악행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사회적 마비 상태다. 시민이 분노를 잃어버린 사회는 호랑이보다 무서운 폭군을 스스로 키워내기 때문이다.

 

人不知而不慍(인불지이불온)이라 했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는 것이 군자의 도리라지만, 리더라는 자들이 스스로의 무지와 무치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세상은 참으로 참담하다.

 

백성을 호랑이 굴로 밀어 넣는 가혹한 정치는 결국 역사에 대한 눈먼 무지와 무치에서 싹튼다. 매일 아침 글을 쓰며 내 안의 무지를 경계하고, 혹여 우리 공동체의 아픔을 저버린 채 부끄러운 줄 모르고 포호빙하(暴虎馮河)의 만용을 부리며 살아가지 않았는지 매섭게 돌아보게 되는 새벽이다.

작성 2026.05.19 07:47 수정 2026.05.20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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