씻어냄의 카타르시스를 넘어 존재의 뿌리를 옮기다 -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으로 읽는 현대 사회(94)

물의 상징으로 그리는 존재의 이동과 새로운 소속의 서막

은혜의 계약이 각인된 영혼의 지울 수 없는 인장

거룩한 브랜드의 인을 맞고 새로운 인생 경영을 시작하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94문

 

Q. What is Baptism? A. Baptism is a sacrament, wherein the washing with water in the name of the Father, and of the Son, and of the Holy Ghost, doth signify and seal our ingrafting into Christ, and partaking of the benefits of the covenant of grace, and our engagement to be the Lord's.
문. 세례란 무엇입니까? 답. 세례는 성례인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물로 씻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접붙임이 되는 것과 은혜 언약의 혜택들에 참여하는 것과 우리가 주님의 사람이 되기로 약속하는 것을 의미하며 인치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마 28:19)
-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롬 6:4)
-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갈 3:27) 

 

[이미지 제공=수현교회]

 

인간은 누구나 '씻음'에 대한 본능적인 갈망을 품고 살아간다. 고대 그리스의 비극을 관람하며 느끼는 감정의 정화인 카타르시스(Catharsis, κάθαρσις)나, 과거의 트라우마로부터의 해방은 모두 정신적인 세척을 의미한다. 일상의 피로를 씻어내는 저녁의 샤워가 우리에게 안식을 주듯, 영혼 역시 자신의 허물과 수치를 씻어내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고 싶어 한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94문은 이러한 인간의 근원적인 욕구를 '세례'라는 거룩한 예식을 통해 신학적으로 정의한다. 세례는 단순히 종교적인 입교 절차를 넘어, 한 인간의 존재론적 소속이 완전히 뒤바뀌는 우주적 사건이다.

 

세례의 핵심적 상징인 '물'은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다. 물은 더러운 것을 씻어내는 세척제인 동시에, 홍수와 같이 모든 생명을 삼키는 죽음의 힘이기도 하다. 성경적 맥락에서 세례의 물은 옛 자아의 익사(溺死)와 새 자아의 탄생을 동시에 의미한다.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그분의 죽음에 동참하여 나의 교만과 탐욕이 물속에 잠기는 것이며, 그분의 부활과 함께 물 밖으로 나와 전혀 다른 생명의 원리로 살아가는 것을 뜻한다.

 

소요리문답은 세례를 '접붙임(Ingrafting)'이라는 농경적 비유로 설명한다. 식물학에서 접붙임이란 본래의 뿌리에서 잘려 나가 다른 나무의 생명력에 연결되는 것을 말한다. 돌감람나무 같던 우리 인생이 참감람나무인 그리스도에게 접붙여질 때, 더 이상 나의 부족한 자원과 한계 속에서 고군분투할 필요가 없어진다. 이제는 그리스도라는 거대한 뿌리로부터 공급되는 은혜의 수액을 받아 누리며 살아가는 존재가 된 것이다.

 

또한 세례는 은혜 언약의 혜택에 참여하는 '인(Seal)'이다. 고대 사회에서 인장은 소유권과 권위를 상징했다. 어떤 물건에 주인의 도장이 찍히는 순간, 그 물건은 더 이상 주인이 없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 보호와 책임 아래 있게 된다. 세례는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에 "너는 내 것이라"고 찍으시는 거룩한 도장이다. 이 인장은 우리가 연약하여 흔들릴 때나 삶의 위기 속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을 때, 우리가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를 상기시켜 주는 강력한 법적 증거가 된다. 현대 사회가 겪는 수많은 심리적 불안은 대개 소속감의 결여와 '버려짐'에 대한 공포에서 기인하는데, 세례는 우주의 창조주가 나의 영원한 후원자가 되셨음을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예식이다.

 

우리가 세례를 통해 주님의 사람이 되기로 약속한다는 것은 일종의 '충성 서약'이자 새로운 삶의 경영 방침을 세우는 일이다. 이는 주객전도의 삶을 청산하는 결단이다. 내 인생의 CEO가 나 자신이었던 시절의 방만 경영을 멈추고, 그리스도를 최고의 의사 결정권자로 모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그분의 명예가 나의 명예가 되고, 그분의 가치관이 나의 비즈니스 윤리와 생활 철학이 된다는 뜻이다. 이제 나의 행동 하나하나가 내가 속한 거룩한 브랜드의 가치를 결정짓는다는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루터가 유혹과 시련의 순간마다 "나는 세례를 받았다(Baptizatus sum)"라고 외치며 자신을 추스렸듯이, 세례는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의 실존적인 힘이다. 우리는 매일 아침 세수하며 우리의 세례를 기억해야 한다. 어제의 수치와 좌절을 씻어내고, 그리스도라는 새 옷을 입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세례 받은 자의 삶이란, 세상의 거친 물결 속에서도 자신이 하나님의 언약 안에 보존되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당당하게 창조적인 인생을 경영해 나가는 위대한 여정이다.

 

 


허동보 목사(Rev. Huh Dongbo) | 수현교회(Suhyun Church)
저서 | 『왕초보 히브리어 펜습자』, 『왕초보 헬라어 펜습자』, 『왕초보 히브리어 성경읽기』, 『고난, 절망의 늪에서 피어난 꽃』, 『부와 기독교신앙』, 『그와 함께라면』, 『만남』, 『AI시대, 히브리어로 답하다』 외

 

 

 

작성 2026.06.03 12:24 수정 2026.06.09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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