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漢儒學] 해대어(海大鱼), 바다를 떠난 물고기와 정치의 오만

전국시대 법가 사상가 한비자(韓非子)의 설림하(說林下)에는 짧지만 강렬한 우화 하나가 나온다. 

바로 ‘해대어(海大鱼)’ 이야기다.

 

정곽군(靖郭君)이 자신의 봉지인 薛(설) 땅에 거대한 성을 쌓으려 하자 많은 이들이 만류했다. 그러나 그는 듣지 않고 간언하는 자들의 출입마저 막아 버렸다. 그때 한 객(門客)이 찾아와 “단 세 마디만 하겠다”며 허락을 구한 뒤 단 세 글자를 남겼다.

 

“海!大!魚!(해대어), 바다의 큰 물고기.”

 

그리고는 돌아서 나갔다. 정곽군(靖郭君)이 다급히 뜻을 묻자 그가 설명했다.

“큰 물고기는 바다에서는 그물로도 잡지 못하고 화살로도 맞히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물을 떠나는 순간, 개미와 땅강아지조차 그를 희롱합니다. 지금 제(齊)나라가 곧 당신의 바다입니다. 제나라를 지키면 薛(설) 땅의 성이 무슨 소용이며, 제나라를 잃으면 薛(설)의 성을 하늘 높이 쌓아도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정곽군(靖郭君)은 결국 성 쌓기를 멈춘다. 본(本)과 말(末)이 무엇인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권력 우화가 아니라 정치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이다. 물고기의 힘은 자기 몸집이 아니라 바다에서 나온다. 정치인 역시 마찬가지다. 최고 권력자의 통치 역량은 그를 떠받치는 지지층, 신뢰, 민심이라는 ‘바다’가 존재할 때만 유효하다. 아무리 뛰어난 정치인도 바다를 잃으면 마른 땅 위의 생선에 불과하다.

 

정치에는 늘 외연 확장의 유혹이 있다. 선거와 집권기에는 중도층과 새 얼굴, 즉 ‘산토끼’가 더 매력적으로 보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정치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새로운 지지를 얻는 과정에서 기존의 바다를 가볍게 여기는 순간이다. 오래된 지지자와 진성 당원들은 단순한 팬덤이 아니다. 그들은 위기 때 방파제가 되어 주고, 결정적인 순간에 실제로 움직이는 정치적 생명선의 근간이다.

 

역사는 지지 기반을 스스로 무너뜨린 정치가 어떤 참극을 맞이하는지 증명해 왔다. 2007년 제17대 대선이 남긴 뼈아픈 교훈이 대표적이다. 당시 정동영 후보 캠프 측은 당권을 쥐기 위해 집권 여당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무리한 차별화를 시도하며 지지층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

 

결정적으로 경선 과정에서 ‘박스떼기·차떼기’로 대변되는 구태의연한 조직 동원과 명의도용 논란 등 치사한 방법으로 동지들을 공격했다. 내부 정적을 숙청하기 위해 휘두른 칼날은 결국 같은 지지계층의 힘을 빼놓았고, 지지자들의 '정치적 효능감'을 완전히 말살시켰다. 그 결과 전통적 지지층이 대거 투표를 포기하면서 역대 최저 투표율 속에서 531만 표 차라는 대참패를 기록했다. 외연 확장을 못 해서가 아니라, 내부의 오만과 추태로 자신들이 놀아야 할 바다를 스스로 오염시킨 결과였다.

 

얼마 전 치러진 지방선거, 특히 서울 지역의 패인 역시 일맥상통한다. 상대 진영의 확장력 때문이 아니라, 전통적 지지층이 “내가 왜 투표장에 가야 하는가”에 대한 명분과 자부심을 잃고 발길을 돌렸기 때문이다. 지지층의 열기가 빠진 정치는 국정 동력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지금 이재명 대통령과 여당 일각에서 추진하는 ‘뉴 이재명’이라는 외연 확장과 인재 영입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다. 국정을 책임지는 자리는 끊임없이 넓어져야 하고, 전 국민이 체감할 성과를 내야 한다.

 

다만 여당 일각의 시선이 새로 온 사람들에게만 과도하게 머물고, 오랜 시간 비바람을 함께 맞으며 이 자리를 만들어 준 사람들의 마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 시작할 때 균열은 시작된다. 바다는 말없이 멀어진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신(神)이 아니다. 인간이기에 판단 착오를 할 수 있고 국정 운영에서 실수가 나올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실수 자체가 아니다. 국정 동력이 흔들릴 때 지지층이 “그래도 믿고 기다려 보자”고 버텨줄 수 있는 두터운 신뢰가 남아 있느냐다. 그것이 바로 바다의 깊이다.

 

큰 물고기가 바다를 떠나 육지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는 순간 파멸은 시작된다. 한비자의 해대어(海大鱼)는 그래서 권력의 정점에 선 오늘의 정치에도 무겁게 묻는다.

 

당신이 쌓으려는 ‘薛(설) 땅의 성’은 무엇인가.

그리고 정작 당신을 고래로 만들어 준 ‘바다’의 고마움을 잊고 있지는 않은가.

작성 2026.06.17 07:25 수정 2026.06.17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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