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04문
Q. What do we pray for in the fourth petition? A. In the fourth petition, which is, Give us this day our daily bread, we pray, that of God's free gift we may receive a competent portion of the good things of this life, and enjoy his blessing with them.
문. 제4간구에서 우리는 무엇을 구합니까? 답.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라는 제4간구에서 우리가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선물로서 이 세상의 좋은 것들 중에서 적당한 몫을 우리가 받고, 그것들과 함께 하나님의 복을 누리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ㆍ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마 6:11)
ㆍ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잠 30:8-9)
ㆍ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창 28:20)
ㆍ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딤전 4:4-5)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구는 언제나 생존을 향한다.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이 생존을 담보하기 위해 끊임없이 '양식'을 축적해 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롭지만, 그 어느 시대보다 깊은 결핍과 불안에 시달린다. 마트의 진열대는 넘쳐나고 냉장고는 가득 차 있지만, 현대인의 내면에는 '내일은 충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만성적 공포가 자리 잡고 있다.
주기도문의 네 번째 간구인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는 바로 인간의 생존과 신뢰, 그리고 탐욕의 경계선에 신학적 기반을 둔다. 이 간구는 단순히 빵 한 덩이를 구하는 구걸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거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한다.
여기서 '일용할 양식'으로 번역된 헬라어 '에피우시오스'(Ἐπιούσιος)는 신약성경 전체에서 오직 주기도문에서만 등장하는 매우 독특한 단어다. 이는 '생존에 필요한' 혹은 '오늘에 속한'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라틴어 역본인 불가타(Vulgata)는 이를 'panem(빵을) nostrum(우리의) quotidianum(매일의)'(우리의 매일의 양식)으로 옮겼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 부나 평생의 연금이 아니라, 바로 '오늘'이라는 24시간의 삶을 지탱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물적 토대임을 반영한다.
유대적 관점에서는 광야의 '만나' 정신을 계승한다고 할 수 있다. 내일을 위해 쌓아둔 만나는 썩었지만, 그날그날 거둔 양식은 생명이 되었다. '희소성'의 원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충분성'의 원리로 옮겨가는 인식의 도약인 것이다.
인간의 탐욕은 흔히 결핍에 대한 공포에서 기인한다. 매슬로(Abraham Maslow, 1908-1970)의 '욕구 단계'에서 최하단에 위치한 생리적 욕구가 해소되지 않을 때 인간은 상위 가치를 지향할 수 없다. 하지만 소요리문답 제104문은 이 생존의 문제를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선물'(God's free gift)로 정의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성취의 압박으로부터 해방시켜 준다.
내가 땀 흘려 번 돈으로 산 빵일지라도, 그 빵을 존재하게 한 대지와 햇빛, 그리고 그것을 먹을 수 있는 건강까지도 근원적으로는 무상의 은총(χάρις)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이러한 고백은 현대인들에게는 무한 경쟁으로 인한 피로를 상쇄하는 강력한 힘이 된다. 나의 생존이 오직 나의 능력에만 달려 있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비로소 타인을 경쟁자가 아닌 공존의 파트너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된다.
소요리문답은 또한 '적당한 몫'(competent portion)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는 구약의 지혜자가 고백한 '호크'(חק), 즉 자신에게 '할당된 몫'과 궤를 같이한다. 너무 부유하여 하나님을 잊을까 두려워하고, 너무 가난하여 죄를 지을까 걱정하는 잠언의 기도는 현대 경제학이 직면한 소득 불균형과 탐욕의 문제를 해결할 신학적 열쇠를 제공한다.
기독교적 자족은 물리적 빈곤이 아니라 영적 충만함에서 나오는 자발적 절제다. 이것은 결코 안일함이나 게으름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가진 것 이상을 탐하는 과잉 소비 사회에서, '충분함'의 지점을 설정하고 그 안에서 감사하는 성숙한 시민 의식을 요구한다.
일용할 양식, 즉 물질의 목적은 물질 그 자체에 있지 않다. 바로 '그것들과 함께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것'(enjoy his blessing with them)에 있다. 많은 재물을 가졌음에도 우울과 허무에 시달리는 현대인의 모습은 물질에 하나님의 복이 결여될 때 발생하는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성경은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고 선언한다. 일상의 평범한 식탁, 가족과 나누는 소박한 대화, 노동 후에 마시는 물 한 잔 속에 깃든 하나님의 임재를 발견하는 것이 바로 복이다. 이것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가 말한 '일상의 예배'이며, 칼빈(John Calvin, 1509-1564)이 강조한 '창조의 극장'에서의 삶이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는 우리가 이 땅의 주인이 아니라 청지기임을 확인하는 겸손의 의식이다. 우리는 오늘도 내일의 근심을 미리 가불하여 영혼을 소모하는 대신, 오늘 우리 손에 쥐여진 양식에 감사하며 그것을 이웃과 나눌 수 있는 넉넉함을 구해야 한다. 진정한 풍요는 쌓아둔 창고의 크기가 아니라, 공급자이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깊이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 고백이 살아날 때, 우리의 식탁은 비로소 하늘의 복이 임하는 거룩한 성찬이 된다.
허동보 목사(Rev. Huh Dongbo) | 수현교회(Suhyun Church)
저서 | 『왕초보 히브리어 펜습자』, 『왕초보 헬라어 펜습자』, 『왕초보 히브리어 성경읽기』, 『고난, 절망의 늪에서 피어난 꽃』, 『부와 기독교신앙』, 『그와 함께라면』, 『만남』, 『AI시대, 히브리어로 답하다』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