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05문
Q. What do we pray for in the fifth petition? A. In the fifth petition, which is, And forgive us our debts, as we forgive our debtors, we pray, that God, for Christ's sake, would freely pardon all our sins; which we are the rather encouraged to ask, because by his grace we are enabled from the heart to forgive others.
문. 제5간구에서 우리는 무엇을 구합니까? 답.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라는 제5간구에서 우리가 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거저 용서해 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구할 용기를 얻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마음으로부터 다른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ㆍ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마 6:12)
ㆍ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시 51:1-2)
ㆍ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시 51:7)
ㆍ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시 51:9)
ㆍ그러하온즉 우리 하나님이여 지금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 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추시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우리가 주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공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니이다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단 9:17-19)
ㆍ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하라(눅 11:4)
ㆍ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마 18:35)

현대 자본주의는 신용(Credit)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부채(빚) 위에 성을 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풍요의 상당 부분은 미래의 노동력을 미리 가져다 쓰는 대출에 기반한다. 그러나 물질적 부채보다 더 무거운 것은 마음의 부채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은 늘 무언가에 미안해하거나, 누군가를 원망하며 살아간다. 이 내밀한 '심리적 장부'는 우리가 타인에게 입은 상처와 우리가 타인에게 준 상처로 빼곡히 기록되어 있다. 주기도문의 다섯 번째 간구인 "우리의 죄(부채)를 사하여 주시옵고"는 바로 이 영혼의 가계부를 청산하고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열겠다는 실존적 선언이다.
여기서 '죄'로 번역된 헬라어 '오페일레마'(ὀφείλημα)는 본래 법률적이거나 경제적인 의미의 '부채'를 뜻한다. 예수께서는 인간의 도덕적 결함과 신앙적 타락을 경제적 용어로 치환하여 설명하셨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갚을 길 없는 거대한 채무를 진 '파산자'임을 시사한다. 라틴어 역본 불가타(Vulgata)가 사용한 '데비타'(Debita)라는 단어 역시 마땅히 지불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 못한 상태를 의미한다.
우리는 창조주가 부여한 생명의 가치를 훼손하고, 사랑의 의무를 저버림으로써 우주적인 부채를 짊어지게 되었다. 이 부채의 무게는 현대인이 느끼는 만성적인 불안과 죄책감의 근원이며, 이를 스스로 해결하려는 모든 시도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은 허망한 결과를 낳는다.
소요리문답 제105문은 이 파산 상태를 해결하는 유일한 열쇠로 "그리스도를 보셔서"(for Christ's sake)라는 구절을 제시한다. 이는 용서가 단순히 하나님이 인간의 잘못을 '못 본 척' 넘어가 주는 감상적인 타협이 아님을 말해준다. 정의(Justice)와 자비(Mercy)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그리스도는 인간이 지불해야 할 부채를 자신의 생명으로 대납하셨다. 이를 신학적으로 '속량'(아폴뤼트로시스, ἀπολύτρωσις)이라 부른다. '주식회사 인류'의 모든 부실 채권을 우량한 자산가인 그리스도가 전액 인수하여 소각해 버린 셈이다. 이 ‘거저 주시는 용서’는 수치심이라는 감옥에 갇힌 현대인에게 선사하는 가장 파격적인 구제금융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용서의 조건처럼 보이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라는 대목이다. 많은 이들이 이를 '내가 먼저 남을 용서해야 하나님도 나를 용서해 주신다'는 거래 계약으로 오해한다. 하지만 소요리문답은 이를 "우리가 구할 용기를 얻는 근거"로 재정의한다. 즉, 타인을 향한 용서는 하나님의 용서를 얻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이미 내 안에 임한 하나님의 은혜(카리스, χάρις)가 외부로 흘러넘치는 증거다.
심리학적으로 타인을 용서하지 못하는 상태는 과거의 상처에 자신을 묶어두는 자학적 행위이다. 넬슨 만델라는 용서하지 않는 것을 "내가 독약을 마시고 적이 죽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고 통찰했다. 내가 타인의 부채를 탕감해 줄 때, 비로소 나는 내가 하나님의 거대한 탕감을 받은 존재임을 확증하며 영혼의 자유를 경험한다.
이러한 신학적 통찰은 현대 비즈니스 윤리와 사회적 회복 탄력성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실패한 창업가나 실수한 구성원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는 문화는 성경의 희년(Jubilee) 정신과 맞닿아 있다. 부채를 영원히 짊어지게 하는 사회는 창의성과 도전을 말살한다. 반면, 용서와 탕감이 작동하는 공동체는 과거의 과오에 매몰되지 않고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라"는 명령은 조직 내의 신뢰 자본(Social Capital)을 축적하는 가장 고차원적인 전략이다. 증오와 복수라는 소모적인 비용을 줄이고 화해와 협력이라는 생산적인 동력을 얻는 것이야말로 용서가 가진 경제적 위력이다.
우리는 더 이상 자신의 허물을 감추기 위해 전전긍긍하거나 타인의 실수를 비난함으로써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할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 공로 안에서 우리의 모든 영적 부채는 '지불 완료' 되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이 놀라운 탕감의 기쁨을 세상이라는 시장에 흘려 보내는 것이다.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 타인의 빚을 탕감해 줄 때, 세상은 비로소 계산기를 두드리는 이해관계를 넘어 신비로운 은혜의 질서로 편입된다. 이제 우리의 기도는 과거의 회한을 씻어내고, 내일의 관계를 회복하는 용기 있는 걸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허동보 목사(Rev. Huh Dongbo) | 수현교회(Suhyun Church)
저서 | 『왕초보 히브리어 펜습자』, 『왕초보 헬라어 펜습자』, 『왕초보 히브리어 성경읽기』, 『고난, 절망의 늪에서 피어난 꽃』, 『부와 기독교신앙』, 『그와 함께라면』, 『만남』, 『AI시대, 히브리어로 답하다』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