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마의 히폴리투스' 다음으로 우리가 만나볼 믿음의 선배는 바로 '카르타고의 키프리아누스(Thascius Caecilius Cyprianus, 200?~258)'입니다. 히폴리투스가 로마에서 치열하게 진리를 수호했다면, 키프리아누스는 북아프리카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교회의 연합과 눈물의 목회를 온몸으로 살다 간 인물입니다.
그는 원래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의 아주 유복하고 고상한 귀족 가문 출신이었습니다. 지금의 튀니지 튀니스(Tunis) 인근 지역이지요. 오늘날 튀니지는 찬란한 고대 로마의 유적과 푸른 지중해가 아름다운 관광지이지만, 영적으로는 기독교의 유산이 거의 사라진 척박한 땅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3세기 당시의 카르타고는 터툴리안과 키프리아누스 같은 거장들을 배출한, 초대교회 신학의 가장 뜨거운 심장이었습니다.
마흔이 넘은 늦은 나이에 예수님을 만난 그는 세상의 모든 부와 명예를 가난한 이들에게 아낌없이 나눠주었습니다. 그 진심 어린 삶 덕분에 예수님을 믿은 지 불과 수년 만에 카르타고 교회의 감독(목회자)으로 추대되었죠. 하지만 그가 목회자로 부임하자마자, 역사상 가장 잔인한 핍박 중 하나인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가 폭풍처럼 몰아쳤습니다.
박해가 시작되자 키프리아누스는 교회를 지키기 위해 잠시 피신하여 편지로 성도들을 돌보았습니다. 이 일로 "비겁하게 도망쳤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진짜 문제는 박해가 끝난 뒤에 터졌습니다. 박해의 칼날이 너무 무서워서 신앙을 배반하고 우상에게 절했던 사람들, 즉 '배교자'들이 박해가 끝나자 눈물을 흘리며 다시 교회로 돌아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당시 교회는 거칠게 두 갈래로 쪼개졌습니다. 한쪽은 "배교자들을 절대 받아줄 수 없다"며 차갑게 문을 닫았고, 다른 쪽은 "아무 조건 없이 다 용서해 주자"며 쉽게 문을 열었습니다. 이때 키프리아누스는 고통스러운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그는 진정한 회개의 과정을 거쳐 이들을 다시 따뜻하게 품어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그러면서 그 유명한 사상을 남기게 됩니다.
"교회를 어머니로 모시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실 수 없다."
이 말은 교회의 제도나 권력을 자랑하려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자녀가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지르고 집을 나가도, 결국 눈물로 받아주고 다시 키워내는 곳은 오직 '어머니의 품'인 교회밖에 없다는 절박한 목회적 고백이었습니다. 그는 교회의 하나 됨과 연합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겼습니다. 갈라지고 찢어지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는 몇 년 뒤 찾아온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도망치지 않고 칼날 앞에 당당히 목을 내밀며 거룩한 순교의 피를 흘렸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삶은 참 쉽게 끊어지고 멀어집니다. 인터넷 댓글 하나 때문에 원수가 되고, 작은 오해 하나로 수십 년 지기 친구와 등을 돌립니다. 교회 안에서도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쉽게 교회를 옮기거나 신앙을 팽개치곤 하지요. "나 혼자만 예수님 잘 믿으면 되지, 굳이 속 시끄럽게 사람들과 부딪쳐야 하나?" 하는 생각이 고개를 들 때가 많습니다.
키프리아누스의 외침은 바로 이런 우리들의 이기적인 마음을 아프게 콕콕 찌릅니다. 신앙은 결코 독불장군처럼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모나고 상처 입은 사람들이 모여 서로 부딪치고 용서하며, 끝내 품어내는 과정이 바로 교회입니다.
자녀가 시험에 떨어졌을 때, 혹은 남편이나 아내가 큰 실수를 저질렀을 때 "거봐, 내가 뭐랬어!" 하고 차갑게 밀어내는 대신, 묵묵히 밥상을 차려주며 다시 일어설 기회를 주는 '의도한 건망증'이 가득한 어머니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직장에서 커다란 실수를 저지른 동료를 무조건 비난하거나 반대로 방관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책임을 나누어지며 수습을 돕는 모습 속에서 키프리아누스가 목숨 걸고 지키려 했던 '하나 됨의 가치'가 살아납니다.
그렇게 서로를 포기하지 않고 품어줄 때, 우리에게는 절망 대신 더 밝고 희망찬 내일이 선물처럼 찾아올 것입니다.
허동보 목사(Rev. Huh Dongbo) | 수현교회(Suhyun Church)
저서 | 『왕초보 히브리어 펜습자』, 『왕초보 헬라어 펜습자』, 『왕초보 히브리어 성경읽기』, 『고난, 절망의 늪에서 피어난 꽃』, 『부와 기독교신앙』, 『그와 함께라면』, 『만남』, 『AI시대, 히브리어로 답하다』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