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르타고의 키프리아누스 다음으로 만나볼 믿음의 선배는 바로 로마의 '노바티아누스(Novatianus, 200?~258)'입니다. 키프리아누스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며 교회의 거룩함을 지키고자 치열하게 고뇌했던 인물이지요.
그는 로마 출신의 아주 유능하고 학식 깊은 기독교 사상가이자 목회자였습니다. 로마 제국의 심장인 이탈리아 로마(Rome)에서 태어나 그곳을 중심으로 평생을 활동했지요. 오늘날 로마는 전 세계 수많은 관광객이 성 베드로 대성당이나 콜로세움을 보기 위해 몰려드는 찬란한 도시이지만, 당시에는 기독교인들이 지하 무덤인 카타콤에 숨어 숨죽여 기도하던 눈물과 핍박의 땅이었습니다. 그는 로마 교회에서 라틴어로 신학 논문을 쓸 만큼 깊은 지성을 가졌고, 성도들의 깊은 존경을 받던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데키우스 황제의 혹독한 박해가 온 교회를 할퀴고 지나간 후, 로마 교회는 거대한 폭풍에 휘말리게 됩니다. 박해 때 무서워서 신앙을 버렸던 이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두고, 로마 교회의 지도자 자리를 둘러싼 깊은 갈등이 고조되었던 것입니다.
당시 새로 세워진 로마의 감독 코르넬리우스는 배교자들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고 다시 교회로 받아들이자는 너그러운 입장이었습니다. 반면, 노바티아누스는 단호했습니다. 박해의 칼날 앞에서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죄는 인간이 감히 용서할 수 없는 치명적인 죄라고 생각했지요. 오직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에 맡겨야지, 교회가 그렇게 쉽게 면죄부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믿었습니다.
그의 핵심 사상은 한마디로 '교회의 절대적인 거룩함'이었습니다. 교회는 흠도 점도 없는 그리스도의 순결한 신부여야 하는데, 배교자들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면 교회 전체가 더러워진다는 논리였지요. 결국 그는 자신을 따르는 이들과 함께 따로 교회를 세우게 되었고, 이들은 역사 속에서 '노바티아누스파' 혹은 스스로를 거룩한 자들이라 부르는 '카타리(Cathari)'라고 칭하게 됩니다. 비록 정통 교회로부터 분열주의자라는 아픈 낙인을 얻게 되었지만, 그 역시 몇 년 뒤 찾아온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신앙을 꺾지 않고 당당히 순교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자신의 신념을 목숨과 바꾼 셈입니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노바티아누스의 모습을 닮은 이들을 참 자주 만나게 됩니다. 직장이나 학교, 혹은 가정 안에서 "원칙은 원칙이다"라며 칼로 물 베듯 엄격한 잣대를 대는 사람들이 있지요. 물론 공동체의 기강을 잡고 올바른 길을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모습입니다. 거짓과 타협하지 않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그 꼿꼿함은 분명 존경받아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내 기준의 정의로움이 너무 서슬 퍼렇게 살아 있으면, 그 칼날에 주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상처를 입게 됩니다. 한번 실수를 저지른 동료에게 "저 사람은 원래 그래"라며 다시는 기회를 주지 않고 낙인을 찍어버리는 모습, 사춘기 자녀가 방황할 때 따뜻하게 안아주기보다 훈계와 규칙만을 들이밀며 다그치는 모습이 바로 현대판 노바티아누스의 그늘입니다. 완벽주의와 엄격함은 자칫 나 자신과 타인을 고립시키는 외로운 감옥이 될 수 있습니다.
기준을 바르게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사랑의 온기가 없다면 그 공동체는 차가운 얼음장처럼 굳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내 삶의 자리에서 아주 조금만 타인의 연약함을 용납해 주고, 실수한 이들에게 다시 일어설 숨구멍을 열어줄 때,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그곳은 정죄의 전쟁터가 아닌 따스한 생명의 숲으로 변해갈 것입니다.
허동보 목사(Rev. Huh Dongbo) | 수현교회(Suhyun Church)
저서 | 『왕초보 히브리어 펜습자』, 『왕초보 헬라어 펜습자』, 『왕초보 히브리어 성경읽기』, 『고난, 절망의 늪에서 피어난 꽃』, 『부와 기독교신앙』, 『그와 함께라면』, 『만남』, 『AI시대, 히브리어로 답하다』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