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으로 만나볼 믿음의 선배는 바로 '광야의 성자, 안토니우스(Antonius, 251?~356)'입니다. 앞서 만난 선배들이 교회의 제도와 교리를 지키기 위해 피 흘리며 싸웠다면, 안토니우스는 복잡한 세상과 자기 안의 욕망으로부터 완전히 도망쳐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독대했던 인물입니다.
그는 이집트의 유복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지금의 이집트 알마니아주 근처 ‘코마(Coma)’ 지역에서 출생하여, 카이로 동쪽의 깊은 사막과 붉은 바다 근처의 산속에서 평생을 보냈지요. 오늘날 이집트는 찬란한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그리고 이슬람 문화가 가득한 곳이지만, 3세기 당시에는 기독교 영성의 가장 깊은 우물이 흐르던 곳이었습니다.
스무 살 무렵 부모를 여읜 그는 엄청난 유산을 물려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예배당에 들어섰을 때, 그의 귀에 꽂힌 성경 말씀이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었습니다.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마 16:21 중에서)
그 길로 그는 동생의 몫만 남겨둔 채 모든 재산을 가난한 이웃들에게 아낌없이 나눠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아무도 찾지 않는 깊은 사막, 버려진 성채 속으로 홀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역사에서는 그를 '최초의 수도사' 혹은 '독거 수도정신의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핍박의 시대가 끝나고 교회가 세상의 권력과 부를 얻으며 서서히 타락해 가자, 그는 거꾸로 세상의 정반대 편인 거칠고 척박한 사막으로 향했던 것입니다.
안토니우스 사상의 핵심은 '철저한 자기 비움과 영적 전쟁'이었습니다. 사막은 아무것도 없는 고요한 곳 같지만, 실상은 인간 내면의 추악한 욕망과 두려움이 사자처럼 울부짖어대는 가장 치열한 전쟁터였습니다. 그는 수십 년 동안 사막의 고독 속에서 밀려오는 성적 유혹, 배고픔의 고통, 그리고 고립감에서 오는 미칠 듯한 공포와 싸웠습니다.
그가 제자들에게 남긴 지혜는 무척이나 단순하면서도 묵직합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매일 밤 눈을 감을 때, 내일은 눈을 뜨지 못할 것처럼 사십시오."
그에게 사막은 세상을 도피하는 숨바꼭질의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내면의 온갖 거짓과 탐욕을 하나님 앞에서 낱낱이 청소하는 거룩한 작업실이었습니다. 신기하게도 그가 세상에서 멀어질수록, 영혼의 길을 잃고 방황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맑은 영성을 마시기 위해 그 깊은 사막까지 줄을 지어 찾아왔습니다. 그는 찾아오는 이들을 따뜻하게 품어주었고, 황제들의 편지에도 흔들리지 않는 초연함을 보여주며 백여 세가 넘는 나이까지 푸른 나무처럼 맑게 살다 주님의 품에 안겼습니다.
오늘날 우리 삶은 소음과 가짜 정보로 가득 차 있습니다.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는 끊임없이 "이것을 사야 행복하다", "남들보다 앞서가야 성공한다"며 우리 영혼을 사정없이 흔들어댑니다. 단 십 분도 가만히 앉아 있질 못하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소비하고 채워 넣어야만 안심하는 중독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지요.
안토니우스가 걸어간 사막의 길은 바로 이런 우리에게 '자발적인 멈춤'의 비밀을 가르쳐 줍니다. 거창하게 이집트 사막으로 떠나지 않더라도, 우리 일상 속에 '나만의 작은 사막'을 만들 수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스마트폰을 켜는 대신 창문을 열고 5분 동안 깊은 호흡으로 하루를 주신 분께 감사 기도를 드리는 것,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시끄러운 영상 대신 조용히 눈을 감고 내 마음의 상태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이 바로 ‘일상의 사막’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화려한 SNS 사진을 보며 밀려오는 부러움과 시기, 질투 앞에서 "내게 주신 오늘의 밥 한 끼가 최고의 축복이다"라며 마음의 브레이크를 밟아보세요. 그 모습 속에서 안토니우스의 영성은 고스란히 재현됩니다. 세상의 소리를 잠시 줄이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우리는 비로소 타인과 비교하지 않는 진짜 자유를 맛보게 됩니다.
그렇게 마음을 비워낼 때, 메마른 사막 같던 우리의 일상 속에서 희망의 새싹이 돋아나고, 주변 사람들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넉넉한 품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허동보 목사(Rev. Huh Dongbo) | 수현교회(Suhyun Church)
저서 | 『왕초보 히브리어 펜습자』, 『왕초보 헬라어 펜습자』, 『왕초보 히브리어 성경읽기』, 『고난, 절망의 늪에서 피어난 꽃』, 『부와 기독교신앙』, 『그와 함께라면』, 『만남』, 『AI시대, 히브리어로 답하다』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