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메라가 고장 난 거 아니야!" 민원실 창구에 앉으면, 웃는 얼굴부터 준비해야 했다.
친절은 업무였지만, 존엄까지 내려놓아야 하는 건 아니었다. 그 경계가 지금도 자주 흐려진다.
"내가 언제 신호를 위반했다는 거야! 카메라가 고장 난 거 아니야?"
민원실 창구 앞, 한 남성이 고지서를 손에 쥐고 목소리를 높였다. 새벽 출근길에 찍힌 신호위반 단속 사진이었다. 본인은 분명 노란불에 지나갔다고 주장했고, 사진 속 신호는 붉은색이었다. 설명을 시작하기도 전에 그는 이미 화가 나 있었다.
"이거 이의신청하면 어떻게 되는 거야, 당신들 카메라 관리나 제대로 해!" 목소리는 점점 커졌고, 뒤에 줄 서 있던 다른 민원인들의 시선이 하나둘 그쪽으로 쏠렸다. 옆자리 동료가 눈짓으로 "괜찮으세요"라고 물었지만,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서류를 다시 펼쳤다.
민원실 근무는 그런 자리였다. 좋은 소식을 가지고 찾아오는 사람은 드물었다. 대부분은 벌금 고지서, 과태료 통지, 면허 정지 안내문을 손에 들고 왔고, 그 안에는 이미 억울함과 분노가 절반쯤 차 있었다. 사고 접수를 하러 온 사람도, 피해 신고를 하러 온 사람도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창구에 앉은 우리는 그 감정을 가장 먼저 받아내는 사람들이었다.
화는 늘 창구로 쏟아졌다
신호위반 벌금 이의신청을 접수하는 날이면 아침부터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왜 나만 걸렸냐"는 항의부터 "카메라가 조작됐다"라는 주장, "경찰이 실적 채우려고 무리하게 단속한다"는 비난까지, 이유는 매번 달랐지만 감정의 온도는 비슷했다. 규정과 절차를 아무리 차분히 설명해도, 상대의 화가 먼저 가라앉아야 대화가 시작됐다.
어떤 날은 서류를 집어 던지는 사람도 있었고, 큰소리로 삿대질을 하며 "책임자 나오라"고 요구하는 사람도 있었다. 책임자가 나가서 똑같은 설명을 반복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 절차를 거쳐야 민원인의 화가 겨우 누그러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규정상 벌금이나 과태료를 임의로 깎아줄 권한도 없었고, 화난 감정을 그대로 맞받아칠 수도 없었다. 그저 같은 설명을 몇 번이고 반복하며, 표정을 무너뜨리지 않으려 애쓰는 것이 전부였다.
근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목이 쉬어 있는 날이 많았다. 소리를 지른 것도 아닌데, 온종일 감정을 억누르느라 몸이 먼저 지쳐 있었다. 어떤 날은 점심시간에 밥이 넘어가지 않아 그냥 물 한 잔만 마시고 오후 근무를 시작한 적도 있었다.
웃음도 업무 일부였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 민원실 근무는 서류 처리보다 감정을 다스리는 일이 더 큰 비중을 차지했다. 상급자들은 "민원인은 항상 옳다"는 식의 태도를 요구했고, 부당한 폭언 앞에서도 웃음으로 넘기는 것이 미덕처럼 여겨졌다.
억울한 순간에도 먼저 고개를 숙이는 쪽은 늘 창구에 앉은 사람이었다. 그때는 그것이 당연한 일인 줄 알았다. 감정을 억누르는 것도 업무 능력 일부라고 배웠으니까. 표정 관리를 잘하는 직원이 "일 잘하는 직원"으로 평가받던 시절이었다.
시간이 흘러 지휘관이 되고 나서야, 그 시절 후배들의 얼굴이 다시 보였다. 민원 응대를 마치고 화장실에서 눈물을 훔치던 젊은 순경, 폭언을 듣고도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음 민원인을 맞이하던 직원들. 그들에게 필요했던 건 "잘 참았다"는 칭찬이 아니라, 부당한 폭언으로부터 보호받을 최소한의 장치였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지휘관이 된 뒤로는 창구 직원이 심한 폭언을 들었다는 보고가 올라오면, 그 자리에서 바로 민원인을 분리하고 상급자가 응대를 넘겨받도록 지침을 바꿨다. 별것 아닌 조치처럼 보여도, 그 한 번의 개입이 직원에게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확인이 되어주었다.
친절은 의무, 존엄은 권리다
공무원이든 서비스직이든, 친절하게 응대하는 것은 직업적 책임이다. 하지만 그 책임이 인격 모독과 폭언까지 감수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친절은 업무상 의무이지만, 존엄은 누구에게나 있는 권리다. 이 둘을 혼동하는 순간, 감정 노동자는 보호받아야 할 사람이 아니라 참아야 할 사람으로 취급된다.
민원인의 억울함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그 감정을 창구 직원에게 쏟아내는 것과 정당하게 항의하는 것은 분명히 다른 일이다. 화를 낸다고 해서 규정이 바뀌지는 않는다. 오히려 차분히 절차를 밟는 쪽이 실제로는 더 빠른 길인 경우가 많았다.
지금은 산업안전보건법에 감정 노동자 보호 조항이 마련되어 있고, 폭언이나 폭행이 있으면 업무를 일시 중단하고 분리 조치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도 명시되어 있다. 공공기관 민원실 상당수도 녹취 안내와 함께 반복적인 폭언에는 상담을 중단할 수 있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다만 제도가 있다는 것과 그 제도를 실제로 쓸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폭언을 들었다면 그 자리에서 날짜와 발언 내용을 기록해두고, 동료나 상급자에게 즉시 알리는 것이 자신을 지키는 첫걸음이다.
시민의 입장에서도 되짚어볼 지점이 있다. 벌금이나 과태료에 억울함을 느낀다면, 그 항의는 제도와 절차를 향해야지 눈앞의 담당자를 향해서는 안 된다. 창구에 앉은 사람은 규정을 만든 사람이 아니라, 그 규정을 안내하는 사람일 뿐이다.
부당하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다면 이의신청이나 행정심판 같은 정식 절차를 통해 다투는 것이 오히려 더 빠르고 정확한 해결책이 된다.
민원실 창구에 앉아본 사람은 안다. 그 자리는 화를 받아내는 자리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해주는 자리여야 한다는 것을. 신호위반 벌금 한 장을 사이에 두고 오가는 짧은 대화 속에서도, 서로를 향한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질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창구 너머의 사람에게도 존엄을 지킬 최소한의 여지를 남겨두었으면 한다.
칼럼니스트 소개

전준석 칼럼니스트는 경찰학 박사이자 35년간의 경찰 생활을 총경으로 마무리한 치안 행정 전문가다. 현재 한국인권성장진흥원 대표로서 우리 사회의 인권 감수성을 높이는 데 헌신하고 있다.
인사혁신처,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등 주요 기관에서 전문 강사로 활동하며 성인지감수성, 4대폭력 예방, 자살 예방 및 직장 내 장애인 인식 개선, 인권 예방, 리더십 코칭 등 폭넓은 주제로 사회적 가치를 전파하는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범죄심리학', '다시 태어나도 경찰', '그대 사랑처럼, 그대 향기처럼', '그대는 늘 선물입니다', '시가 내 안에 꽃을 피웠다' 등이 있다.
경찰관으로 35년간 근무하면서 많은 사람이 인권 침해를 당하는 것을 보고 문제가 있음을 몸소 깨달았다. 우리 국민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차이를 인정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차별이라는 것이 없어지고 인권이 성장할 것이다. 그런 생각에서 [삼시세끼 인권, 전준석 칼럼]을 연재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