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01문
Q. What do we pray for in the first petition? A. In the first petition, (which is, Hallowed be thy name,) we pray, That God would enable us and others to glorify him in all that whereby he maketh himself known; and that he would dispose all things to his own glory.
문. 첫 번째 기도에서 우리는 무엇을 구합니까? 답.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첫 번째 기도에서 우리가 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시는 모든 일에서 우리와 다른 이들이 그분을 영화롭게 할 수 있게 해 주시라는 것과, 모든 일을 그분의 영광이 되도록 처분해 주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마 6:9)
주의 도를 땅 위에, 주의 구원을 모든 나라에게 알리소서 하나님이여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시 67:2-3)
여호와라 이름하신 주만 온 세계의 지존자로 알게 하소서(시 83:18)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브랜드'의 시대다. 기업은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천문학적인 자원을 쏟아붓고, 개인은 '퍼스널 브랜딩'이라는 명목하에 자신의 평판을 관리하는 데 몰두한다. 이름은 단순히 대상을 지칭하는 기호를 넘어, 그 존재의 가치와 정체성, 그리고 신뢰도를 응축한 결정체가 되었다.
페르디낭 드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 1857-1913)의 '기표(Signifiant)'와 '기의(Signifié)' 개념을 빌리자면, 이름이라는 기표는 그 존재가 지닌 본질이라는 기의를 온전히 담아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이름의 화려한 껍데기만 숭배할 뿐, 그 안의 진실한 가치를 상실한 '상징의 과잉'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01문이 제시하는 첫 번째 간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는 우리에게 존재론적 전환을 요구한다.
이 간구의 '거룩히 여김'(Hallowed)은 헬라어로 '하기아조'(ἁγιάζω)다. 이는 단순히 깨끗하게 청소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구별하여 봉헌하다' 혹은 '절대적인 가치를 인정하다'는 뜻을 내포한다. 기도의 첫머리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해달라는 요청은, 신이 거룩하지 않기 때문에 거룩하게 해달라는 보완적 요구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탐욕과 무지로 인해 훼손된 신의 명예를 우리 삶의 현장에서 본래의 자리로 되돌려 놓겠다는 '인식의 교정'이다. 이는 마치 위조지폐가 난무하는 시장에서 진폐의 가치를 정확히 감별해내어 통용시키는 정화 작업과 같다.
기업이 이윤 추구라는 지엽적 목표에 매몰될 때 브랜드는 오염되지만, 사회적 가치와 공익이라는 본질적 목적에 충실할 때 그 이름은 존경받는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시는 모든 일에서 그분을 영화롭게 한다"는 소요리문답의 설명은 우리 일상적 노동과 경제 활동이 곧 신의 성품을 드러내는 매개체가 되어야 함을 가르친다. 우리가 정직하게 제품을 만들고, 공정하게 계약을 체결하며, 타인의 노동 가치를 존중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이름은 종교적 언어를 넘어 세속의 문법 안에서도 '거룩히 여김'을 받게 된다. 기도는 입술의 고백에서 시작하여 손끝의 성실함으로 완성되는 셈이다.
또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행위는 비대한 자아(Narcissism)로부터의 탈출을 돕는다. 현대인의 고통은 대개 '나의 이름'을 높이려는 투쟁에서 기인한다. 내가 인정받지 못할 때, 내 이름이 무시당할 때 우리는 분노하고 좌절한다. 그러나 기도의 우선순위를 '그분의 이름'에 둘 때, 자아의 강박적인 긴장은 완화된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자기 초월'(Self-transcendence)이라 부른다. 나보다 더 크고 영원한 가치에 나의 이름을 편입시킬 때, 인간은 비로소 사소한 평판의 흔들림에서 벗어나 존재론적 평온을 얻는다. 신의 이름이 거룩해지는 것은 신을 위한 이기적 요구가 아니라, 인간이 ‘자기 우상화’라는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다.
소요리문답은 또한 "모든 일을 그분의 영광이 되도록 처분해 주시라는 것"을 구하라고 가르친다. 여기서 '처분'(Dispose)은 라틴어 '디스포노'(dispono)에서 유래한 것으로 질서 있게 배열하고 배치한다는 뜻이다. 이는 우리 삶의 우연과 고난, 심지어 실패조차도 신의 거대한 섭리 안에서 재배열되어 결국 최선의 결과를 낳을 것임을 신뢰하는 태도다. 경제적 불황이나 예기치 못한 경영상의 위기 속에서도, 이 기도를 드리는 자는 당장의 손실에 함몰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위기를 통해 신의 지혜와 통치가 어떻게 드러날지를 기대하며, 현재의 무질서를 신의 질서로 번역해내는 지성적 인내를 발휘한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기도는 우리 삶의 '중심축'을 이동시키는 일이다. 나의 성공이 신의 영광을 증명하는 도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존재 자체가 신의 거룩함을 비추는 거울이 되기를 자처하는 것이다.
거울은 스스로 빛을 내지 않지만, 태양을 향해 올바른 각도를 유지할 때 세상을 밝힌다. 우리가 신의 성품인 공의와 사랑, 진실을 향해 삶의 각도를 조율할 때, 하나님의 이름은 우리를 통해 비로소 '현존하는 실재'가 된다. 오늘 우리의 일터와 가정, 그리고 관계의 틈바구니에서 그 거룩한 이름이 어떻게 번역되고 있는지 자문해야 한다. 이름의 가치는 부르는 소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이름을 담아내는 삶의 무게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허동보 목사(Rev. Huh Dongbo) | 수현교회(Suhyun Church)
저서 | 『왕초보 히브리어 펜습자』, 『왕초보 헬라어 펜습자』, 『왕초보 히브리어 성경읽기』, 『고난, 절망의 늪에서 피어난 꽃』, 『부와 기독교신앙』, 『그와 함께라면』, 『만남』, 『AI시대, 히브리어로 답하다』 외














